
수실라 카르키 네팔 임시 총리가 14일(현지시간) 수도 카트만두 총리 청사에서 첫 정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로이터]
네팔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인한 사망자가 72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전 여성 대법원장이 임시 총리로 취임, 국정에 착수하면서 폭력 사태가 일단 가라앉고 있다.
네팔 당국이 통행금지를 해제하는 등 일상 회복 조치를 취하는 가운데 수실라 카르키(73) 임시 총리는 14일(현지시간) 시위대의 부패 종식 요구를 따르고 6개월로 정해진 임기를 꼭 지키겠다고 밝혔다.
AFP·AP 통신 등에 따르면 카르키 총리는 이날 수도 카트만두의 총리 청사에서 취임 후 첫 정부 회의를 갖고 "우리 모두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뭉쳐야 한다"면서 사태 진정과 국정 정상화 노력을 다짐했다.
그는 "우리는 (이번 시위를 주도한) Z세대의 사고방식에 따라 일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 집단이 요구하는 것은 부패 종식, 좋은 통치와 경제적 평등"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신과 나는 이를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6개월 이상 이 자리에 머물지 않을 것이며, 책임을 완수하고 차기 의회와 장관들에게 권력을 이양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카르키 총리는 이날 시위 사태 사망자들을 위해 1분간 묵념한 뒤 회의를 시작했다.
그는 사망한 시위대 유족에게 각각 100만 루피(약 987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부상자들을 돌볼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네팔 보건부에 따르면 이번 시위 사망자가 기존 51명에서 72명으로 늘었으며, 부상자도 최소 2천113명으로 집계됐다.
보건부 관계자는 시위 사태 와중에 "불에 타거나 공격당한 쇼핑몰·주택과 기타 건물에서 시신이 여럿 발견되고 있다"고 전했다.
사망자 명단에 경찰관 3명도 포함됐으며, 시위로 혼란한 틈을 타 교도소에서 탈옥한 수감자들이 군경과 충돌해 숨지기도 했다. 탈출한 수감자 1만2천500여명은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다.
지난 12일 밤 취임한 카르키 총리는 전날 카트만두의 병원을 방문, 총상을 입은 시위자를 만나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전날 카트만두 등지에서 시위가 중단되고 평온을 되찾으면서 네팔 정부는 카트만두와 주변 지역의 통행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이에 따라 이들 지역에서는 지난 9일 밤 통행금지 조치가 시행된 이후 처음으로 교통 운행이 재개되고 시장·상점이 다시 문을 여는 등 일상생활이 회복되는 분위기다.
시위 기간 길거리마다 대규모로 배치됐던 군경 병력도 전날부터 숫자가 크게 줄었다.
카트만두의 한 상점 직원인 두르가 마가르(23)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오늘 우리는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어 "부패에 맞서는 이라면 Z세대든 정치권의 나이 든 사람이든 상관없다"면서 "그저 (부패를) 끝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카르키 총리는 람 찬드라 포우델 네팔 대통령에 의해 임시 총리로 임명됐다.
그는 2016년 7월부터 약 1년간 여성 첫 대법원장을 맡아 강단 있는 판결과 부패에 강경히 맞서는 입장으로 대중적 지지를 받은 인물이다.
카르키 총리는 포우델 대통령과 아쇼크 라즈 시그델 육군 참모총장, 시위 지도자들 사이 이틀 동안의 협상을 거쳐 선임됐다.
그는 현재 자신이 맡은 총리직을 바라지 않았다면서 "길거리에서 내 이름이 불려 나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번 시위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시민단체 '하미 네팔'(우리는 네팔이다)이 카르키 총리를 추천, 대통령과 육군 참모총장을 설득했다고 이 단체 회원 3명이 로이터 통신에 밝혔다.
하미 네팔의 설립자인 전직 DJ 출신 수단 구룽(36) 등 이 단체 지도부는 이날도 주요 내각 직책을 결정하기 위해 회의를 하고 일부 기존 공무원의 해임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미 네팔은 젊은 층에 인기 있는 메신저 디스코드를 통해 대규모 시위를 이끌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포우델 대통령은 카르키 총리의 권고에 따라 하원을 해산하고 내년 3월 5일 총선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포우델 대통령은 "매우 어렵고 복잡하며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주기를 진심으로 호소한다"고 말했다.
한편 네팔과 인접한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네팔의 "평화, 진보, 번영"을 지지한다면서 카르키 총리의 취임을 축하했다.
중국 외교부도 "중국과 네팔 관계를 꾸준히 발전시키고 싶다"고 발표했다.
앞서 지난 5일 네팔 정부가 가짜뉴스 확산을 막는다면서 유튜브, 페이스북 등 26개 소셜미디어의 접속을 차단하자 반발한 청년들의 시위가 시작됐다.
특히 부패 척결과 경제 발전에 소극적인 정부에 실망한 젊은 층이 대거 이번 시위에 가담하면서 카트만두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로도 확산했다.
경찰이 지난 8일부터 최루탄을 비롯해 물대포와 고무탄을 쏘며 강경 진압을 해 사상자가 늘었고, 이후 시위대가 대통령과 총리 관저에 불을 지르는 등 상황이 더 악화했다.
총리 관저와 대통령 집무실, 대법원, 주요 정부 부처, 경찰서 여러 곳이 불에 탔으며, 유명 슈퍼마켓 체인점 여러 곳 등 주요 가문의 사업체와 저택도 공격받았다.
이로 인해 샤르마 올리 총리가 지난 9일 사임하고 총리 관저를 떠났으며, 이후 그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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