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만씨 추방 반대 서명운동 전개를 2일 발표한 뉴저지서로돕기센터의 장만자(오른쪽부터) 이사, 폴 윤 목사, 김병만씨, 최덕희 세종한국학교 교감 등이 한인사회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오바마 정권이 들어선 후 불법체류자 사면안이 포함된 이민개혁법안이 곧 통과될듯 애드벌룬을 높이 띠웠으나 의회에서 번번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보다 통과 가능성이 높다던 드림액트 법안 마저 무산돼 이제는 다시 제출할 기력조차 쇄진해 보인다. 그로인해 기회의 나라에서 꿈을 펼쳐보려던 서류미비 부모 슬하 청소년들의 희망은 여지없이 꺾이고 말았다. 그뿐인가. 이민개혁법을 추진한답시고 동시에 추진하던 불법체류자 색출작업만은 그 고삐를 바짝 조이는 바람에 애꿎은 서류미비자들이 여기저기서 추방되는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뉴저지 김병만씨의 경우도 그중의 하나다. 몇년전 브로커를 통해 발급받은 운전면허증을 갱신하기 위해 차량국을 찾았던 김씨는 현장에서 서류위조 혐의로 체포됐다고 한다. 김씨와 같이 브로커를 통해 위조 운전면허를 땄다가 발각되어 추방당한 사람들은 많지만 김씨의 경우는 남다른 가족사를 지니고 있다.
1998년 한국에서 태어난 딸 센디가 선천성 유전질환인 백색증(알비니즘)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온몸 전체가 백색이고 머리카락은 노랑색이다. 뿐만아니라 백색증으로 인해 시력이 약해졌고 피부 또한 약해 온몸에 붉은 반점이 여러군데 나타나 있었다. 바깥에 피부가 노출되면 곧 온몸이 붉은 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외출하기 전에 선크림 오일을 얼굴에 바르고 햇볕을 차단하기 위해 검은색 선글라스와 채양이 긴 모자를 썼다. 이 때문에 센디는 바깥출입을 피하고 되도록 실내에서 지내는 편이다.
김씨 부부는 센디의 희귀병 치료를 위해 11년전 미국땅을 밟았다. 방문비자로 입국한 김씨는 레오니아에 살면서 콜택시 운전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한편 센디양의 치료도 병행하고 있다. 센디양은 현재 레오니아중학교 7학년에 재학 중이다. 그러다가 최근 차량국에서 운전면허를 갱신하는 과정에서 적발되고 말았다. 김씨 가족은 오는 4월13일 추방재판을 앞두고 호구지책인 콜택시 영업도하지 못한 채 막막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가족이 한국으로 추방되면 센디양의 치료도 중단될 뿐 아니라 센디양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부모의 마음은 한층 더 무거워 보인다.
지난주 필자가 침을 맞으러 갔다가 우연히 김씨 가족과 조우한 적이 있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센디양은 아주 이국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갓 태어난 병아리 색깔의 노란 머리에 유난히 흰 얼굴은 백납에 가까운 색깔이었다. 요즘은 머리 염색을 많이 하기 때문에 금발이 그리 어색한 세상은 아니지만 센디양의 머리와 얼굴색깔은 조화가 잘 되지 않는 그런 모습이었다. 실상은 혼혈사회이면서도 단군자손이라는 순수 단일혈통을 고집하는 한국에서라면 주위 어린이들로 부터 따돌림 당하기 십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와같은 김씨 가족의 딱한 사정이 뉴저지 서로돕기센터(대표 폴윤)의 도움으로 언론(한국일보 2월26일, 3월1일자)에 보도되고 김씨의 추방을 막아보자는 캠페인이 현재 벌어지고 있다. 4월3일에는 김씨 돕기 자선음악회도 예술인들에 의해 계획되고 있다.
김병만씨에게 현재 필요한 도움은 재판부에 제출할 청원서의 연대서명이고, 법적 대응을 하기 위한 변호사 선임비용, 그리고 245i 조항에 따른 영주권 신청 절차 등이다. 과거 김씨는 245i 이민구제법안 조항에 의거 영주권을 신청한 적이 있으나 당시 그를 써포트했던 교회가 문을 닫는 바람에 무위로 돌아간 적이 있었다.
지금 당장 그에게 필요한 법적, 경제적 도움을 주기 위해 뉴저지한인회와 서로돕기센터, 뉴저지한인상록회 등이 힘을 모으고 있지만 벅차 보인다. 이럴 때 커뮤니티에 ‘이머전시 펀드’, 비상기금이라고 불러도 좋고 재난기금이라고 불러도 좋다. 좀더 넓은 시각으로 복지기금이라고 해도 좋다. 긴급시에 필요한 기금이 설치돼 있었더라면 적기에 훌륭한 역할을 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김씨의 추방재판이 4월 초로 잡혀있기 때문에 그리 늦지는 않지만 갑자기 발생한 사건에 주위사람들이 긴장된다.그와같은 비상기금은 갑자기 들이닥친 재난이나 불행으로 부터 우리의 이웃들을 보호하기 위한 복지기금이다. 평소에 그런 기금이 상설로 설치돼 있다면 이럴 때 당황하지 않고 의롭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각종 보험에 여유있게 들어있지 못한 이민사회에서는 그와 같은 비상기금이 훌륭한 보험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비상기금의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전혀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커뮤니티 리더들이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것 뿐이다. 첫째 한인회 같은 기존 단체에 복지서비스 기구를 독립적으로 설치하고 비상기금의 명목으로 펀드 레이징을 하는 방법이다. 1980년대 중반, 뉴욕한인회에서 복지재단을 설치하고 운영했던 방식이다.둘째로 현재 뉴욕일원 봉사단체들에 기금을 분배해주는 커뮤니티재단(KACF)이나 아름다운재단 같은 기구로 부터 비상기금 명목의 할당을 받아 적립하는 것이다. 그들 재단 역시 봉사를 원칙으로 하는고로 큰 이의가 없을 것이다.
셋째로 한인사회에서 가장 많은 재정이 몰리는 교회들로 부터 구제기금 명목의 기부를 받는 것이다. 이번에도 뉴저지의 몇몇 교회, 열거하자면 뉴저지연합교회, 필그림교회, 뉴저지장로교회, 초대교회, 동산교회, 소망교회 등이 김씨 가족돕기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교회들은 지역사회 구제에 대해 벽을 높이 쌓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이번에 동참하는 교회들처럼 사회구제를 교회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교회들이 점차 늘고 있다는 사실은 한인사회의 미래를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다.아직도 정착과정에 있는 한인사회에는 언제 어떤 재난이 닥칠런지 모르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럴 때 미리 예비된 비상기금이 마련돼 있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생각해 본다. 이번 김병만씨 가족의 경우도 그렇지만 지난해 퀸즈 베이사이드 화재사고로 인해 갑자기 길거리로 몰려났던 아파트 가구들이 그런 경우이다. 또 불의의 방화사건으로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버린 여학생 사건도 있었다. 그와 같은 예기치 않았던 사건이 발생했을 때 진가를 발휘할 비상기금의 설치를 강력히 제안한다. 요즘처럼 갈등 많고 각박해진 세상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애써 불우이웃을 돕는 일을 찾아서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만 더불어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커뮤니티,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오래된 기록으로 남아있지만 지난 15년전 뉴욕한인회가 기금을 모으고 불의에 재난을 당한 동포들을 구제했던 일이 생각난다.이듬해 3월30일 무연고자로서 암으로 사경을 헤매던 손진경씨를 돕는 한편 본국으로 부터 가족
을 초청해 상봉시켰던 일, 그해 6월7일 강도 상해사건을 당한 택시 운전기사 최모씨, 불량배의 칼에 찔려 중상을 입은 변모씨, 동포경영의 상점에서 일하다가 흉악범에 의해 희생된 고 권동수씨 가족의 생활 보조금을 지급했던 일등이 복지재단의 몫이었다. 또 영주권 신청을 해놓고 10년씩이나 기다리는 이산가족들의 상봉작업을 성공시켰던 일은 인도적인 견지에서도 손꼽히는 케이스 중의 하나였다.
<국사편찬위 해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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