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면 어김 없이 걸려오는 전화.
“안녕 리즈, 좋은 아침. 오늘도 잘 지내고 남편에게 안부 전해줘”.
내 카페의 손님이었던 그가 속해 있던 회사가 다른 데로 옮긴 이후 3년 째 매일 아침 빠짐 없이 걸려오는 이탈리아 아저씨 필립의 전화이다. 그는 지난 몇 년 동안 카페의 첫 손님으로 라떼 한 잔을 마셔야만 하루를 즐겁게 시작할 수 있었다는 손님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은주의 목소리를 닮은(?) 내가 만들어 주는 라떼 한 잔은 까다로운 수퍼바이저의 닥달을 이겨내게 한다며 무슨 이야기 끝에 <한류>가 무엇인가 하고 내게 물어왔었다. 그가 한류(韓流)에 빠지게 된 것은 수 년 전에 우연히 본 이은주 주연의 영화 “안녕 U.F.O” 이후라고 하였다.
그 후론 한국 영화 및 한국 문화에 빠져들었고 이은주의 열성 팬이 되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작고한 작가나 배우 혹은 가수들의 무덤을 찾거나 문학관 등을 방문하듯이, 필립 아저씨도 2005년 2월 22일 25살의 나이로 이은주가 자살한 이후 그녀의 사진을 들고 다니면서 그녀를 애도한다. 때로 이야기 중에 이은주 이야기가 나오면 그의 눈동자가 촉촉히 젖어들곤 하는데 괜히 나까지 콧시울이 시큰해지곤 한다. 그녀 때문에 필립에게 닥친 한류 열풍은 그를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있는 극성 열성 팬으로 만들어 버렸다.
한류(韓流)란 말은 한국 노래를 녹음하던 중국의 프로듀서가, 한국의 노래(음율)이란 단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방송을 통해 전파되기 시작한 것이라 한다. 지금은 이 단어가 한국의 모든 문화, 영화, 음악, 비디오, 미술 등을 총 집합하는 단어로 자리잡았다. 오랜 세월 동안 동양인을 깔보는 의미었던 오리엔탈리즘을 뛰어넘는 포스트오리엔탈리즘이 바로 한류라고 할 수 있다.
한류의 열풍은 생각보다 뜨거워서 일본, 중국은 물론 혹은 아랍 손님들도 가끔 한류에 대해 물어보곤 하는데 그들은 송혜교나 고현정 등에 대해 알고 싶어하기도 하며 대장금의 내용을 줄줄이 이야기 하기도 한다.
왜 중동을 포함한 아시아를 비롯하여 다른 서구에서도 한류에 열광적인 손짓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이며 본성적인 인간 휴머니즘이 아닐까? 더구나 이제 세계는 서구적인 근대 문명에 피곤해 하고 식상해 있다. 끝 없이 발전하면서 자연 위에 군림하고 발전하는 문명에 거센 반기를 들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작가 <미야자끼 하야오>의 작품처럼 그의 작품은 일본적이긴 하지만 오직 일본만을 위한 닫힌 이야기가 없다. 그의 작품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누가 보아도 공감할 수 있는 범 세계적 문화적 콘텐츠를 이끌어 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감>이란 단어는 얼마나 달콤한가 말이다. 우리도 한류의 열풍에 힘입어 한국만을 위한 콘텐츠가 아닌 전세계가 같이 공감하는 문화 콘텐츠 개발이 시급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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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인터넷의 발전으로 전세계가 동시 생활권에 들어있다. 클릭 한번이면 지구 어느 쪽에 있든지 동시간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도 알 수 있는 시대이며 구글 Earth를 통하여 전 세계 어느 곳에 갈 수 있다. 안방에서 루부르 박물관에 걸려 있는 <모나리자>의 붓의 터치까지 볼 수 있는 상황에서 동서양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기 보다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주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러한 시대에 한류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적 문화를 리드하면서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그런 쪽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얼마 전에 남편과 함께 필립 아저씨와 저녁을 먹었다. 원래는 우리가 저녁을 살 차례였는데 그에게 이은주 사진을 편집하여 액자에 넣어 선물로 주자 그는 어린아이처럼 눈물까지 글썽이며 좋아하더니 우리 몰래 저녁 값을 먼저 지불하였다. 때론 죽은 사람이 산 자를 능가한다더니 죽은 이은주와 한류의 영향력은 대단하여 나의 밥 값까지 굳게(?) 만들었으니 한류가 좋긴 좋다며 화기애애한 대화로 끝을 낸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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