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에게 책이라고 하면 말할 것도 없이 종이에 인쇄된 것을 지칭하는데 이제는 인터넷 책이 보편화 되어 가고 있으니 구분하여 불러야겠다. 내가 대학을 다닌 50여년 전만해도 기초과목 이외에는 우리말로 된 교재가 없어서 전문 과목은 교수들의 강의 노트에 의존해야 되니 복습은 할 수 있어도 예습은 힘들었다. 혹시 학습에 도움이 될까하여 외국어책(당시에는 원서라고 했다)을 사려면 값이 만만치가 않았다. 그러다가 학교를 졸업하고 동남아에서 일할 기회가 있어 홍콩에 있는 서점가에 가보니 꿈도 꿔보지 못한 외국책들이 즐비했다. 여유가 있을 때마다 제목이 좋은 책들을 구입하여 후에 읽겠다고 내방에 쌓아놓곤 했다.
나의 책에 대한 호기심과 집착은 아마 일제로부터 해방되며 출판된 한글 동화책과 만화로부터 였을 것이다. 누나들이 읽던 일본책은 읽지 못했고 학교에 막 입학하여 배운 한글 책을 누나들의 도움으로 읽었는데 나에게 새로운 세계가 눈 앞에 전개되는 듯 싶었다. 아마 처음 읽은 것이 ‘똘똘이의 모험’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부터 나혼자 아는 것은 아는대로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그때 책 읽는 경험이 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주었다. 16세기의 철학자 에라스무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돈이 생기면 책을 사고 나머지가 있으면 음식을 샀다” 라는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여러군데 이사를 다니며 이삿짐에 제일 큰 부피가 책이었는데 남에게 주자니 내몸의 일부를 주는 것 같았고 그러지 않으려니 짐의 부피가 너무 많곤 하여 애를 먹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내 책은 빌려주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시 마친 다음 샌프란시스코에 취직되어서 ‘선셋’에 있는 원 베드룸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이제 생활도 안정되고 전부터 갖고 싶었던 ‘엔싸이글로피디아 브리타니카’를 내 월급의 절반되는 액수에 계약하고 매달 30달러씩 여러 해에 걸쳐 지불했다. 따라서 매년 증보판도 구입했다. 결혼한 다음 우리 부부가 구입한 첫번째 재산 항목이었다. 이렇게 소중히 여기던 대영 백과 사전은 인터넷이 나오며 사양길로 접어들고 집안에 귀찮은 존재로 변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지식의 보고로 알려졌었는데 이제는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는 정도이고, 그렇다고 이용하는 사람도 없다. 예전에는 가정집에서 필요없어 도서관이나 구세군에 기증하면 환영했는데 지금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내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다. 백과사전을 처리하려는데 받는 곳이 없어 궁리 끝에 도서관 앞에 있는 우체통 같이 생긴 ‘북 리턴’에 몇 십권의 책을 넣고 돌아섰는데 미안한 생각이 들더란다.
40여년 넘은 백과 사전을 아직도 갖고 있는데 이것을 버리자는 아내의 이야기는 귀로 흘려 버린다. 지금도 그책을 보느라면 좋은 음식을 먹은 다음에 오는 포만감을 느낀다. 이런 책들이 인터넷 백과 사전인 ‘위키피디아’에 밀린다. 이제 시작된 지 10년 되는 전자 백과 사전은 지난 11월에 전세계 4억 넘는 독자가 열람했다. 그리고 1700만 아티클이 270여개의 언어로 실려 있다고 한다. 가히 천문학적인 숫자인데 다른 백과사전처럼 전문 집필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독자의 직접 투고로 이루어진다. 가끔 엉터리정보가 오르면 그 수명이 오래가지 못하리만치 독자들의 관심이 적지 않다. 어떤 전문가에 의하면 활자화된 대영백과사전에 버금가리만큼 내용이 충실한 백과 사전이라고 한다. 이렇게 우리가 좋건 싫건간에 이제 글읽는 것도 인터넷 매체 영향을 받는다. 나도 옛 사람이 되어가는지 책장은 손으로 넘기는게 책읽는 맛이 난다고 내또래와 이야기하며 책 좋아 하는 사람들만이 아는 이야기를 하고 웃었다.
얼마전 전자책은 물론 근래에 유행하는 IPAD를 사놓고도 아직은 그것을 통하여 책을 읽지 않는다. 위키피디아가 좋기는한데 자꾸 대영백과사전과 비교하게 된다. 내 집과 사무실 서가에는 적지 않은 책들이 꽂혀 있고 지금도 정기적으로 구입한다. 역시 종이로 인쇄된 책의 매력은 버릴 수 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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