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들이 언제부터인가 이니셜을 스스럼 없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특히 한국전쟁 다음에 불어 닥친 서구 물결과 그에 따르는 서양사람들과 교류할 때 우리 이름 발음하기가 어려워 이니셜이 쓰여졌을 것이다. 당시 미국에서 공부한 학계나 정치계의 지도자들은 미국에서 쓰던 이름을 그냥 쓰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이름을 서양이름이라 하지 않고 크리스찬 이름이라고 했다. 더구나 19세기의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학교를 세우고 제대로 된 이름이 없던 조선 여자들에게 서양식 이름을 붙여준 게 외국식 이름이 우리에게 소개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 이외에도 외국 상사의 한국직원들은 한국 이름의 알파벳 두자를 딴 이니셜로 부르는게 유행이 되기도 했다.
1960년도 중순에 반도 호텔에 있던 미국계 여행사에 취직하니 동료 직원 중에 이니셜이 BS와 DS도 있었는데 나에게 JH라고 부르자고 했다. 그리 나쁘지도 않아 몇년간 그렇게 쓰다가 유학 와서 공부를 끝낸 다음 개업한 내 회사의 이름을 그렇게 명명하기도 했다. 아마 그런 전통은 아시아에서 오래 살던 서양인들이 아시아 사람들의 호칭 편의에 의해서였겠지만 그들도 영국이나 미국에서 오래 쓰던 전통을 이어 받았을 것이다. 영국사람들이 자기네끼리 그렇게 부르기도 했고 그 전통이 미국에 소개되고 남부에서 지금도 그리 쓰는 경향이 있다. 조지나 윌리암보다는 이니셜이 가져다 주는 상류 사회의 분위기를 즐겼을 수도 있다. 큰 농장을 갖고 노예를 부리던 남부 사람들은 전형적인 유럽풍의 귀족 생활을 했고 지금도 그런 습관이 남아 있다. 여러해 전 TV연속극 ‘다이내시티’의 주인공 JR도 그런 류의 인사였을 것이다.
이런 이니셜을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이 즐겨쓰기 시작했다. 특히 대권을 가졌거나 꿈꾸는 사람들을 그리 부르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정치인으로 이니셜을 처음 쓰기 시작한 사람은 김종필 전 중앙정보 부장이었을 것이다. 5.16 군사혁명 이후 날던 새도 떨어뜨린다는 정보 기관의 수장이 된 그는 언제부터인지 JP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외국상사가 밀집되어 있던 반도호텔 근처에서 대학생들과 국가의 장래를 이야기했고 젊은이들의 정치 참여를 권장했다고 한다. 당시 30대 기수론을 30대인 그가 주창했을 것이다. 외국사람들이 많던 그곳에서 이니셜을 이상하게 받아 들이지 않고 이니셜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것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새 정권 창출에 거는 희망 등이 자연스레 어울려지는 그런 시대였다. 그로부터 유명해진 이니셜을 군부 실세 였던 어떤 이는 HR이라고 쓰기 시작하더니 3김씨의 나머지 두사람도 쓰기 시작했다. 작고한 DJ나 생존한 YS등 전직 대통령도 본인들은 어떠하였는지 모르겠지만 언론에서는 그들을 이니셜로 부르곤 했다.
우리 문화는 윗사람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부르는 것을 기피하고 전에 유교문화의 영향력이 심할 때는 윗사람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이 금기시 되기도 했다. 따라서 꼭 직책을 붙여 부르게 되는데 이니셜을 쓰면 존칭, 직위등을 붙일 필요가 없어서 그렇게 쓴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대통령이 되면서 그를 MB라고 언론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이외에도 MJ라고 쓰는 정치인도 있는 것을 보면 아마 그도 대권을 꿈꾸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정치 지도자가 되며 이름 대신에 이니셜을 쓰는 나라는 아마 한국 밖에는 없지 않나 생각 한다. 서양문화가 소개되며 많은 것이 필요에 의하여 토착 되며 일반화가 되는데 특이하게도 한국에서 이니셜문화는 정치 지도층의 전용물이 된 것 같다. 더구나 대권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으례 갖게 되는 어쩌면 호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이니셜 자체가 새로운 정치 지도자를 만드는게 아니고 서양풍의 이니셜이 시작된 유럽의 민주적인 정치전통도 함께 포용하며 그런 토양을 기르는 것이 서양 이니셜이 가져다 주는 참 의미 아닌가 하고 한해를 보내며 생각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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