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 60주년 인터뷰 - 오윤영 예비역 장군
“기습남침에 쓰러졌던
당시의 교훈 잊지말고
2세들에게 교육 필요”
“지금이라도 조국이 부르면 공산주의자들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공산주의와 손을 잡을 수 없고 무모한 지원은 안 됩니다”
해방과 함께 평양에 공산주의자들이 들어온 후 거의 평생을 이들과 싸워온 오윤영 예비역 장군(84)은 6.25발발 60주년을 맞아 자라나는 2세들이 한국 전쟁이 정확하게 어떻게 일어났는지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오씨는 6.25 당시 힘없는 한국 정부가 큰 소리만 치다 북한군의 기습 남침에 맥없이 쓰러진 당시의 값진 교훈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산당의 행위에 대해서 잊어서는 안 되고 개인이나 나라가 힘없고 실력이 없으면 무너진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씨는 또 “지금 좌파들이 너무 설치고 있는 현 한국의 정국을 생각하면 너무나 서글프다”며 “그러나 앞으로 한국의 상황이 지금보다도 훨씬 더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씨는 20여년 동안 미국에 살고 있지만 마음 한 곳에는 6.25 당시의 상황을 잊어본 적이 없다. 그는 당시 작전부에서는 북한이 남침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비상경계 태세에 돌입했는데 정작 전쟁 발발 몇 주를 남겨두고 비상을 해제하고 군인들의 휴가를 허락한 이유에 대한 의문을 아직 풀지 못하고 있다.
오씨는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0주년이 되었지만 당시 군이 비상을 왜 해제했는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며 “전쟁 발발 전에 남한에 북한 간첩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어 이에 연관되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퇴역 후 미국으로 건너온 오씨는 그동안 먼 곳에서 조국을 직접 도울 수는 없었지만 간접적으로 또는 마음으로 항상 한국을 ‘지원’하면서 한국전의 교훈을 틈만 있으면 가족과 친지 이웃들에게 전해 왔다.
현재 헌팅턴비치 노인아파트에서 부인 오근애씨와 거주하고 있는 오씨는 3남1녀와 손자손녀 8명, 증손자 2명을 두고 있다.
■오윤영 예비역 장군은
고향이 평양인 오윤영 예비역 장군은 숭인상업학교를 마치고 공산당에 대항하는 결사조직 ‘서북청년회’에서 활동하다 1946년 2월 20세 때 월남했다. 육사 8기로 김종필씨와 동기인 오씨는 1948년 입대해 정보 참모부 차장(대위)으로 복무중 6.25를 맞았다. 서울 수복 후 평양에 제일 먼저 입성한 전과로 소령으로 특진한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당시 대령)과 작전부에서 근무했다. 그는 이후 공비 토벌, 월남전 참전을 비롯해 순수 군인의 길만 걸어오다 84년 도미했다.
<문태기 기자>
오윤영 예비역 장군이 6.25당시 상황을 회상하고 있다. 그는 조국이 부르면 언제든지 공산주의자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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