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녀석이 미국으로 유학온지 이년여. 드디어 올해 대학입학원서를 넣어야 한다. 뒤늦게 미국에 온 탓에 모든 것을 따라잡으려니 바쁘고 힘들다. 운동도 하고 친구들과 신나게 클럽활동도 하니 한국의 수험생에 비하면야 늘어진 팔자지만, 그래도 모든게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그동안은 학교 공부를 그런대로 잘 따라가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싶었는데 원서 넣을 시간이 닥쳐오니 왜 이리 부족한 것들만 가득한지 조금씩 걱정이 된다. 한국에서 온 학생들은 척척 만점도 잘 맞는다는데 아들 녀석의 에스에이티 성적은 부족하기 턱이 없어 다가오는 10월부터 줄줄이 시험 스케쥴을 잡아놓았다. 학원이라도 다녀보자니 혼자하겠다고 버틴다.
　　　
하던대로만 하면 그래도 남부끄럽지 않은 대학은 가겠다 싶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유학을 가고 싶단다. 아무리 한국보다 편하다지만 미국에서 학교 공부를 따라간다는 것이 쉽지않을 듯싶었고 엄청난 학비도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들의 입장은 강경했다. 새벽에 일어나 하루종일 학교와 학원을 오가느라 새벽 1-2시나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설 수 있는 ‘뺑뺑이 생활’이 더이상은 하고 싶지 않으며 도무지 자신의 인생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대학때 가는게 어떻겠냐고 달래도 보고 가면 모든게 다 될줄 아냐고 협박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세상에서 제일 바보짓이 전재산을 교육비에 투자하는 것이란 주변의 만류를 뒤로한 체 바보이기를 거부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바보짓이 그리 바보짓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비 리그 입학 허가서라도 받아놓았나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공부에 쫓기지 않다보니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또 자연스레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생각하고 계획하게 된것 같다. 자신이 어떤 대학에 가던 무엇을 하던 앞으로의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을 질 수 있을 거라며 엄마는 아무 걱정을 마시라는데 무슨 걱정을 더 하랴. 늘 웃고 있는 아들을 보니 행복하고 보다 넓은 안목으로 세상을 보는 아들이 대견하다. 이 모든 것들이 미국 유학으로만 가능했던 일인가 생각하니 조금 씁쓰름함도 있지만 어쨋거나 마음은 뿌듯하다.
　　　
한국에서는 성적지상주의로 살다보니 모든 잘못이 좋은 성적 하나로 용서된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공부 이외의 영역에서 자꾸만 비뚤어진 삶을 사는 듯하다. 주변의 엄마들로부터 대학생이 되어서도 아이들 뒤치닥거리 해주기에 바쁘다는 푸념을 자주 듣는다. 아이들이 감사히 받아들여주면 그나마 다행이고 대부분 당연하게 호사를 누린다. 엄마를 하녀 부리듯 한다고 아들 녀석과도 자주 입씨름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진작에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아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지켜봐주는 여유를 갖지 못함이 후회가 된다. 그랬다면 아이도 나도 훨씬 더 일찍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을.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그러기에 한국에서는 그렇게 아이를 몰아쳤으리라. 어떤 아이들이 자신이 공부 못하기를, 인생에 실패하기를 꿈꾸겠는가? 스스로 서기 위해서 적지 않은 시간이 들겠지만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면 힘들고도 먼 인생의 골인 지점을 향해 혼자서도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으리라. 주변에서 많은 조기 유학생들을 본다. 유학길이 그저 좋은 대학을 가려는 조급한 한국에서의 꿈의 연장이 아니기를, 자신의 인생목표를 찾고 스스로 설 수 있는 즐거운 여정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