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서구 문학 작품이자 가장 위대한 작품의 하나로 손꼽히는 ‘일리아드’는 트로이 전쟁이 무대다. ‘고대 그리스의 바이블’로 불릴 만큼 그리스인들의 필독 도서였고 후에 로마를 거쳐 서양 사람들 정신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작품이었지만 트로이는 오랫동안 전설의 도시로만 여겨졌었다.
이것이 실존한 도시임을 입증한 것은 19세기 아마추어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이다. 그는 두 차례의 발굴을 통해 이 도시가 폐허가 됐다 재건된 사실을 밝혀냈으며 그 후 계속된 발굴 작업은 트로이가 아홉 번이나 세워졌고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것이 사실임을 확인해줬다.
이 도시는 어떻게 거대한 부를 쌓았고 수없이 폐허가 됐으며 아홉 번이나 일어났을까. 많은 학자들은 그 이유를 다다넬스 해협에 자리 잡은 지리적 요인에서 찾는다. 흑해와 지중해, 소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동서남북 무역 교차로에 위치한 트로이는 이곳을 지나갈 수밖에 없는 수많은 무역상들로부터 걷은 통행세만으로도 번성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이 수없이 무너지고 다시 세워진 것도 군사적 경제적 요충에 자리 잡은 원죄에 기인한다. 누구나 원하는 곳에 있었음으로 수시로 침략의 대상이 됐고 폐허가 된 다음에는 반드시 재건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트로이 전쟁의 진짜 원인은 헬렌의 미모가 아니라 트로이의 전략적 가치였음을 알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잘 사는 나라들을 보면 무역이 활발한 것이 특징이다. 고대 그리스나 트로이는 말할 것도 없고 찬란한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운 플로렌스와 베니스 등은 모두 대표적인 무역 중심지였다. 19세기와 20세기 들어와서도 세계를 제패한 영국과 미국은 세계 최대 무역국이었다.
무역은 가장 효과적으로 부를 쌓는 수단이다. 마젤란의 세계 일주 이후 동양을 다녀간 서양의 무역선들은 향료 장사를 통해 투자금의 수백 배에서 수천 배에 달하는 이익을 남겼다. 마젤란 선단도 본인 자신이 사망하고 선박과 물자의 대부분을 잃었음에도 살아 돌아온 선원들이 챙겨온 향료 장사로 수십 배를 챙겼다. 이렇게 번 돈이 나중에 산업 자본으로 변해 산업 혁명을 가능하게 했음은 익히 아는 일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6.25 이후 한국만 봐도 기적 같은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비결이 수출 주도 정책이었다는데 토를 달 사람은 많지 않다. 세계 시장을 상대로 한 상품 개발로 한국 기업은 경쟁력을 높였고 의류, 신발 등 단순 상품에서 컴퓨터, 자동차, 조선 등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말을 바꿔 타면서 선진 경제로 도약해 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국에서 자유 무역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지금 한국에서 노무현 정부의 인기는 바닥 이하다. 그 정부가 한국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이룩한 최대 업적이 있다면 아마도 한미 자유 무역 협정이 아닐까. 이 협정이 발효되면 한국은 수출 증대와 함께 기업 경쟁력이 강화되고 한미 간의 정치 안보 관계도 더욱 돈독해질 것이 분명 하다.
그러나 이 협정이 양국 국회의 비준을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한국은 한국대로 4월 총선이 눈앞에 닥쳐 여야 모두 정신이 없고 미국은 미국대로 이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민주당이 상하원 다수를 점하고 있어 통과가 쉽지 않아 보인다. 사정이 그런데도 이 협정의 큰 수혜자가 될 미주 한인 사회의 반응은 미지근하기 그지없다.
지난 10일 수잔 슈왑 무역 대표부 대사는 LA 한인타운을 방문, 이 협정에 대한 한인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미주 한인들은 지난 번 종군 위안부 결의안 때 힘을 모으면 큰 일을 해낼 수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 지금부터라도 각 지역 한인회와 상공 회의소, 주요 단체들이 지역 커뮤니티를 상대로 지지 서명 캠페인, 연방 상하원 의원들에게 편지 보내기 운동을 벌여 미주 한인들의 저력을 보여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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