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키 홍씨
가정폭력 당한 여성들 보듬죠
여성보호 셸터인
’푸른초장의 집’ 에서
평범한 주부 몸으로
무보수로 사무돕고
영어까지 가르쳐
리버사이드카운티 코로나에 살고 있는 비키 홍씨. 2세짜리 쌍둥이를 키우는 평범한 1.5세 전업주부인 홍씨는 1주일에 두 번씩 조금은 색다른 삶을 산다.
출근 길 정체가 끝날 즈음인 오전 9시30분 친정 엄마에게 두 아들을 맡긴 뒤 1시간 남짓 91번 프리웨이를 달려 홍씨가 도착하는 곳은 OC에 위치한 한 가정집. 평범한 주택 같아 보이는 그곳은 한인 가정폭력 피해여성과 자녀를 위한 셸터 푸른 초장의 집(원장 엄영아)이다.
홍씨는 지난해부터 이곳에서 금요일에는 영어를 가르치고, 목요일에는 일반 사무를 돕고 있다. 명함에 적힌 직책은 코디네이터이지만, 보수를 전혀 받지 않는 자원봉사자이다.
10세 때 LA로 이민 온 1.5세인 홍씨가 자원봉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부동산 에이전트, 융자, 영어 강사, 공무원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며 해당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열심히 하면 할수록 마음속의 공허함은 커져만 갔다.
그의 공허함은 남편 직장 때문에 이사 간 버지니아주에서 채워졌다. 교육구에서 근무했던 홍씨는 임신을 한 여학생들이 아이를 낳고 잘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한 ‘프로라이프’ 비영리단체에서 2년 동안 봉사했다.
LA로 돌아와 쌍둥이를 낳고 키우느라 바쁜 1년을 보낸 홍씨의 마음속에는 자연스럽게 다시 여성관련 기관에서 계속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싹텄다. 마침 교회 친구가 푸른 초장의 집을 소개해 줬고, 트레이닝 기간을 거친 뒤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첫돌도 안 지난 쌍둥이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사업을 하는 남편과 딸을 대신해 손주를 돌보겠다는 친정엄마의 흔쾌한 동의에 용기를 얻었다. 육아문제 때문에 주 2일 밖에 시간을 못해 미안하다는 홍씨는 자원봉사 활동에 인색한 한인사회 문화가 아쉽다.
“푸른 초장의 집과 비슷한 규모와 연륜의 주류사회 비영리단체에서는 보통 20명 정도의 자원봉사자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우리는 다섯 명도 안 돼 원장님이 너무 많은 희생을 한다. 대부분의 한인 비영리단체가 비슷한 형편인 것 같다.”
미국식 교육을 받은 1.5세와 2세라고 특별히 나을 것도 없다. “자원봉사를 하는 친구가 거의 없다”는 그는 “사람마다 욕구가 다르기 때문에 강요할 수는 없지만, 돈이나 가족에만 모든 가치를 부여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씨는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또는 ‘나는 아무런 재주도 없는데’라는 생각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멀리 보지 말고 교회 같은 주변을 둘러볼 것”을 권했다. 작은 일이라도 한번 시작하는 게 어렵지 자원봉사도 일단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푸른 초장의 집만 해도 특별한 기술이나 학위가 있어야 봉사활동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서류정리와 우편물 발송하기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거든요.”
홍씨는 최근 셋째를 가져 임신 3개월째이다. 정신과 육체적으로 힘들 때이지만, 오히려 목·금요일이 기다려진다. 출산을 전후해 2개월 정도만 쉰 뒤, 기회가 되는 한 푸른 초장의 집을 계속 돕는 게 그의 소망이다.
‘요즘 태교에 신경 쓰는 임산부들이 많던데 가정이 깨져 상처 받은 여성을 매주 만나는 게 괜찮으냐?’는 질문에 그는 살며시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웃음 속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이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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