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강원 철원과 경기 포천 일대의 유엔군들에게서 갑자기 고열과 신부전, 출혈 증상이 나타났다. 1953년까지 약 3,200명의 환자가 발생했는데 이 중 30%가 목숨을 잃었다. 원인을 찾을 수 없어 유엔군과 중공군은 서로 세균전을 벌인다며 비방을 주고받았다.
■ 이 출혈열의 정체를 규명한 이가 이호왕(1928~2022) 박사다. 그는 이 증상이 경기 북부 일대에서 나타나는 점에 주목하고 1969년부터 7년간 4,000~5,000마리의 들쥐를 채집해 연구했다. 1976년 등줄쥐의 폐 조직에서 출혈열 바이러스를 발견, 한탄강에서 이름을 따 ‘한탄바이러스’로 명명했다. 관련 바이러스군(群)이 ‘한타바이러스’로 불린다. 이 박사는 1988년 세계 최초로 백신(한타박스)도 개발했는데 이 박사와 연구진은 직접 자기 팔에 주사기를 꽂고 임상실험에 참여했다고 한다.
■ ‘신의 저주’로 불리던 감염병 정복에는 연구에 자신의 몸을 바친 의·과학자들의 자기희생이 있다. 콜레라 원인이 오리무중이던 1883년 뉴욕타임스에는 “독일 출신 의학자가 자기 몸에 콜레라 환자의 혈액을 주입하고 현미경으로 피를 들여다보던 중 6시간 뒤 사망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진료현장을 지켜온 감염병 의료진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서아프리카에서 치사율 25%를 넘는 에볼라가 유행하던 2014년, 우리 정부가 파견 의료인력을 공모하자 지원자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4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당시 시에라리온에 파견됐던 한 의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유일한 감염내과 의사인 내가 감염되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이 컸다”고 했다.
■ 149명을 태우고 대서양을 오가던 크루즈선 ‘MV 혼디우스’호에서 최근 8명의 한타바이러스 의심환자가 발생, 3명이 사망했다.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한 변종이지만, 승객들은 패닉에 빠지지 않고 차분히 대기 중이라고 한다. 공포에 질리지 않고 차분한 마음으로 이번 사태를 지켜볼 수 있는 건 감염병 정복에 헌신한 의료진의 소명의식 덕택일 것이다.
<이왕구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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