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암을 극복하고 UCLA에 합격한 박혜민양 가족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아버지 박은국씨, 혜민양, 어머니 제니퍼 최씨, 남동생 앤드류 군. <이승관 기자>
박혜민양 “머리 안빠지는 항암제 만들래요”
10학년 때 뼈암, 인공관절 끼워
1년간 투병중 교사들이 방문지도
UCLA 진학 생체공학 전공키로
대학 입학을 준비하며 한창 미래의 꿈을 키울 나이에 청천벽력과 같은 희귀암 선고를 받았다면? 절망에 빠져 포기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건한 의지와 가족들의 헌신적 보살핌으로 암을 극복하고 UCLA에 합격한 한인 여고생이 있어 감동과 희망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밸리 채스워스고교 졸업반인 박혜민(18)양. 오는 9월 UCLA 진학을 결정한 혜민양은 그러나 2년전만 해도 대학 진학은 엄두도 내지 못할 캄캄한 상황이었다.
평소 건강하던 혜민양이 느닷없는 암 판정을 받은 건 16세 생일이 막 지난 2005년 2월. 갑자기 멍든 것처럼 파랗게 부어오른 오른쪽 무릎의 통증이 낫지 않아 MRI와 조직검사를 받아보니 결과는 뜻밖에도 연간 700여건밖에 안된다는 희귀암인 ‘뼈암’이었다. 담당 의사는 “다리를 절단하던지 암 부위를 잘라내고 인공관절을 끼우던지, 선택은 두 가지 뿐”이라는 선고를 내렸다.
부모인 박은국·제니퍼 최씨와 혜민양은 고민할 겨를 없이 인공관절 수술을 선택했다. 평생 운동을 할 수 없고 15년에 한 번씩 인공 관절을 교체해줘야 하지만 다리를 완전히 잃는 것보다는 나았기 때문이다. 조기 발견 덕에 다른 부위로 전이가 없었다는 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어진 항암치료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항암 약물이 워낙 독성이 강해 의식이 희미해지고 구토가 나 음식을 입에 댈 수도 없었다.
체중은 20파운드나 줄었다. 어머니 최씨는 직장을 휴직하고 혜민양 간호에 매달렸다.
그러나 혜민양은 암 선고의 충격과 고통스런 항암치료 과정을 너무도 꿋꿋하게 견뎠다. 매일 눈물을 쏟는 부모님에게 “병동에는 나보다 더 상태가 나쁜 사람들도 많은데 걱정 말라”며 오히려 위로했다고 한다.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학업에 대한 혜민양의 의지는 변함이 없었다. 10학년 2학기부터 11학년 2학기까지 꼬박 1년을 학교를 가지 못했지만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집으로 직접 찾아와 혜민양의 공부를 도왔고 덕분에 복학 후에는 줄곧 A학점을 받았다고 한다. 결과는 UCLA와 UC버클리 동시 합격. 혜민양은 집에서 가까운 UCLA에서 생체공학을 전공하기로 결정했다. 혜민양은 지금은 항암 치료를 마치고 학교에 복귀, 방과후에는 파트타임 일까지 하고 있다.
“암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고 가족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는 혜민양은 “치료를 받으며 머리가 빠지지 않는 항암제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길을 찾고 싶다는 대견스런 포부를 밝혔다.
<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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