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라다의 노인 콘도 단지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는 마가렛 콜러 여사가 아름다운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친구 유금순씨를 다룬 색바랜 신문을 바라보며 회상에 잠겨 있다. <이승관 기자>
“유산 6만5,000달러 한국 청소년 위해 써달라”
고 유금순씨, 87년 백인친구에 맡긴 돈
마침내 대안가정 제공단체에 기부 성사
20년만에 아름다운 약속이 지켜졌고, 유언이 실천됐다.
1987년 북가주에서 숨을 거둔 고 유금자(당시 59세)씨가 한국의 어린이들을 위해 유산 6만5,000달러를 써달라며 남긴 유언이 2007년 들어 돈을 기증할 한국의 청소년 보호기관을 찾음으로써 마침내 빛을 보게 됐다.
유씨의 아름다운 기부는 독신이었던 유씨가 미국에서 사귄 가족보다 가까운 친구 마가렛 콜러(80) 여사가 유산 신탁인으로서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변함없는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6일 라미라다 자택에서 만난 콜러 여사는 “이제야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다. 하늘에서 금순이가 행복해 할 것같다”며 오래 전 떠난 친구 생각에 눈물을 적셨다.
이들의 인연은 1980년 샌프란시스코 동쪽의 아름다운 도시인 베네시아에서 시작됐다.
병원에서 소셜워커로 일하던 유씨가 은퇴 후 이 도시로 이주해온 것이다. 유씨는 함경북도 선천 출신으로 한국전 와중에 피난내려와 경희대를 졸업한 여성 엘리트였다. 50년대 후반 유학와 인디애나 대학에서 언론학 석사를, 위스콘신 대학에서 사회복지학 석사를 받고 소셜워커로 일해 왔다.
유씨에 대한 기사가 1968년 8월 21일자 데일리노스웨스턴이란 신문에 ‘병원에서 일하는 한인 여성’이란 주제로 소개될 정도로 한인은 물론 유학온 아시안도 많지 않은 때였다.
내성적인 성격인 유씨였지만 당시 베네시아시에서 새로운 주민들을 환영해 주는 프로그램 ‘웰컴 웨건’ 담당자로 일했던 콜러 여사와는 친구 이상의 친자매 같은 교분을 쌓게 됐다.
콜러 여사는 “남편은 혼자서 미국생활을 개척한 금순이를 굉장히 존경했고, 금순이도 우리에게 많은 한식 요리법을 가르쳐주며 주말과 공휴일은 아예 가족처럼 지냈다”고 회상했다.
유씨는 그러나 자궁암에 걸려 힘없이 인생의 종착역을 향하고 있었고, 지기가 아무런 바람도 없이 세상을 뜨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콜러 여사는 유씨에게 유언장 작성을 권했다.
유씨는 몇 명 안되던 지인들에게 약간의 유산을 나눠주고, 나머지는 한국으로 보내 장학재단을 설립해 청소년들을 도와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콜러여사는 유산을 집행할 수탁인으로 지명됐다.
유씨의 장례이후 콜러 여사는 라미라다의 노인콘도단지로 이주했고, 당시 유씨의 지인들을 통해 한국에 장학재단 설립을 문의해 놓았으나, 오랜시간 답을 듣지 못하고 하릴없이 20년이 흘렀다.
콜러 여사는 올해 초 같은 단지의 주민회 이사로 활동하는 박경준(67)씨를 소개받아 한국에서 장학재단 설립엔 돈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불우 청소년들에게 대안가정을 제공하는 한국의 ‘들꽃피는 마을’을 소개받아 이 단체에 유씨의 유언을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콜러 여사는 “늦었지만 그녀가 원하던 대로 유언을 지켜줘 얽혔던 실타래를 푼 느낌”이라면서 “금순이는 매사에 사려가 깊으면서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던 내 일생 최고의 친구였다”고 말했다.
<배형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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