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는“경제학 박사 학위를 가진 금속”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경기의 흐름을 어떤 지표보다 먼저 정확히 알리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회복될 때는 제일 먼저 가격이 오르고 경기가 둔화될 때는 제일 먼저 값이 내린다.
그 까닭은 구리가 주택과 오피스 신축에 필요한 전선에서 상하수도 시설, 자동차, 전자 부품 원료에 이르기까지 어떤 원자재보다 경제 각 분야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금속이기 때문이다. 경기가 좋아지면 이들에 대한 수요가 올라 구리 값이 뛰고 반대의 경우는 내리게 된다.
그 구리 값이 지난 주 10%나 하락했다. 지난 12월 최고치에 비하면 불과 한 달 새 27%가 폭락한 것이다. 떨어지고 있는 것은 구리뿐만이 아니다. 올 들어 비철금속에서 곡물, 육류에서 섬유에 이르기까지 온갖 원자재 가격이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원유가다. 작년 한 때 배럴 당 77달러를 호가하던 석유 값은 역시 연초부터 폭락세로 돌변, 55달러 선까지 내려왔다. 작년에는 배럴 당 100달러로 시간 문제라고 떠들던 전문가들이 이제는 45달러로 내려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유가 하락이 아직 주유소 가격에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하락세가 계속될 경우 고유가 부담에 시달려온 소비자들은 한 시름 덜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가 하락을 기뻐만 할 수는 없다. 이처럼 가격 변화 폭이 큰 것은 단기 차액을 노린 투기꾼들이 몰려들었다 예상과는 반대로 값이 내리자 한꺼번에 내다 팔았기 때문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하락 원인은 이들에 대한 수요 감소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경기가 둔화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작년 1/4분기 5.6%의 성장을 기록한 미 GDP는 2/4분기 2.6%로 떨어지더니 3/4분기에는 2%대로 내려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마이너스 성장도 불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역시 경기의 흐름에 민감한 미 트럭 운송지수도 지난 10월 1.9%에 이어 11월 3.6% 하락, 3년래 최저를 기록했다.
이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소위 ‘수익률 역전’ 현상이다. ‘수익률 역전’이란 장기 채권 금리가 단기 채권보다 낮아지는 현상으로 불황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다. 지난 40년간 ‘수익률 역전’ 현상이 7번 있었는데 그 중 6번이 불황으로 이어졌다. 지난 2001년 불황 때도 2000년 7월부터 6개월간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통상적으로는 상환기간이 길수록 금리도 높아지는 것이 순리다. 그만큼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에 예금주들이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차 불경기가 와 자금 수요가 줄어들거나 인플레가 지금보다 낮아질 것이 예상되는 경우 예외적으로 사람들은 단기보다 금리가 낮더라도 장기 채권을 선호한다. 머지않아 단기 금리가 지금보다 훨씬 내려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현재 10년 만기 연방 채권 수익률은4.6%로 연방 금리 5.25%는 물론 3개월 연방 단기 채권 수익률 5.05%보다도 낮다. 한 때 일시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이 현상이 7개월 째 지속되자 전문가들은 불황 도래 가능성을 최고 50%까지 높여 잡고 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주택 경기 하락도 큰 변수다. 가장 낙관적인 견해는 올해 말부터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난 수년간의 폭등은 당분간 없으리라는 것이 대세다. 반면 비관론자들은 주택 불황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새해 벽두부터 올 경기 전망이 썩 밝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장 경제 하에서 호황과 불황은 피해갈 수 없는 경기 사이클의 일부다. 가계는 가계대로,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대로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알뜰 살림을 하겠다는 것을 새해 결심의 하나에 넣어 두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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