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마야 아즈테크 문명의 몰락이다. 컬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당시 아즈테크 족은 지금 멕시코 일대에 호전적인 전사들로 무장된 인구 수백만의 대제국을 건설해 놓고 있었다. 지금 멕시코시티가 서 있는 그들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은 유럽 어느 도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고 곳곳에 웅장한 피라미드를 세울 정도로 높은 수준의 기술을 지녔다.
이런 나라가 1519년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끄는 불과 400명의 스페인 군에게 힘없이 무너진 것이다. 퓰리처 수상작이자 베스트셀러가 된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의 저자 자렛 다이아몬드는 이렇게 설명한다. 책제목 그대로 스페인 군에게는 총과 세균과 강철이 있었고 아즈테크에게는 이것이 없었으며 그것이 제국의 운명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말을 처음 본 아즈테크 인들은 말을 탄 스페인 군을 인간이 아닌 신으로 생각했으며 거기다 굉음과 함께 멀리서 불을 뿜어 사람을 죽이는 총을 보고는 혼비백산해 싸워 보지도 못하고 도망치기에 바빴다. 또 오랜 세월 가축과 함께 살면서 온갖 동물성 전염병에 익숙한 유럽인들과는 달리 면역성이 없던 이들은 병균의 힘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갔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럽인과 접촉 후 사망한 원주민의 90%가 총칼이 아니라 병에 걸려 죽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스페인 군에게는 이런 이점 외에 운도 따라줬다. 아즈테크 인들은 주신 퀘찰코아틀이 동쪽에서 돌아오리라 믿고 있었다. 공교롭게 코르테스 군의 차림이 예언에 나타난 신의 차림과 비슷했을 뿐 아니라 시점과 방향이 예언과 일치했다. 많은 아즈테크 인들이 코르테스를 신으로 생각했고 따라서 제대로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어찌 됐든 인구 수백만의 제국이 불과 400명의 군대에 의해 무너졌다는 것은 제국 내부에 이미 심각한 취약점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아즈테크 제국이 무너진 결정적인 요인은 그 자신이 주변 나라들을 쳐들어가 약탈하고 산 포로들의 심장을 꺼내 신에게 바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압제자였기 때문이다. 그 밑에서 신음하던 부족들은 코르테스가 나타나자 이를 기화로 반란을 일으켰고 아즈테크는 사실상 원주민들의 내분으로 망하고 만 것이다.
멕시코시티보다 훨씬 남쪽인 유카탄 반도 일대에 자리 잡고 있던 마야 문명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기원 3세기에서 10세기 경 번성했던 마야 문명은 처음에는 아즈테크와는 달리 평화로운 종족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연구가 계속되면서 0의 개념을 독자적으로 알아내고 유럽보다 정확한 달력을 제작할 정도로 높은 천문학적 지식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는 아즈테크와 조금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잔인했음이 밝혀졌다. 한 때 중남미 일대에 찬란한 문명을 건설했던 마야 족의 나라가 사라진 데 대해 많은 학자들은 끊임없는 부족간의 전쟁에 환경 파괴, 가뭄 등 천재지변에 겹쳐졌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한 때 신대륙의 인디언들을 문명에 때 묻지 않고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살던 ‘고귀한 야만인’(Noble Savage)이라 부른 적이 있다. 그러나 최근 나온 연구들은 인디언도 똑같은 인간이며 유럽인에 못지않게 얼마든지 잔인하고 환경 파괴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개봉된 멜 깁슨의 ‘아포칼립토’를 보면 망조가 든 마야 문명의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 “위대한 문명은 내부가 병들어 있지 않는 한 외부의 침략만으로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윌 듀런트의 말과 함께 시작되는 이 영화는 지나치게 잔인하지만 배우를 모두 원주민으로 쓰고 대사도 마야어로 했을 뿐 아니라 복장과 관습 등 당시 시대상을 정확히 묘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전쟁을 일삼고 환경을 돌보지 않는 문명이 망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은 마야 아즈테크 문명의 몰락을 비웃기 전 자신들은 과연 이들보다 나은 지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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