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은 여러모로 특이하다. 우선 노벨이 돈을 내놓고 유언으로 상을 주라고 한 리스트에 올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평화, 문학, 물리학, 화학, 의학상이 1901년부터 주어진 것과는 달리 스웨덴 은행 창립 300주년을 맞아 1968년 제정됐다.
또 유일하게 인문사회 과학자에게 주는 상이다. 인문 과학도 학문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생겨났으며 1995년부터는 수상자를 경제학자에 국한시키지 않고 정치, 심리, 기타 사회 과학 분야로 넓혔다. 그럼에도 현재까지는 경제학자만 받고 있다.
이 상도 다른 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미국인들이 휩쓸고 있다. 미국 내 숱한 대학 중 노벨 경제학상 단골손님이 있다. 바로 시카고 대학이다. 지난 40년간 10여명의 수상자가 이 대학 출신이다. 거의 1/3을 거머쥔 셈이다.
시카고 대를 경제학에 관한 한 초일류급으로 키운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첫손가락에 꼽히는 사람이 밀튼 프리드먼 교수다. 가난한 유대계 체코 이민 1.5세로 식당 웨이터를 하며 고학을 한 그는 이제 20세기 최대 경제학자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정부가 경제 발전을 위해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통념으로 굳어져 있던 시절 어째서 정부의 시장 개입이 부작용만 초래하며 오히려 경제를 해치는가를 방대한 자료와 빈틈없는 논리를 통해 보여줬다. 이런 이단자적 이론으로 오랫동안 학계에서 찬밥 신세였던 그의 위상은 예측대로 1970년대 들어 고실업과 인플레가 함께 닥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1980년 레이건의 경제 고문역을 맡으면서 그의 ‘작은 정부론’은 실제 정책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80년대의 긴 호황은 상당 부분 그의 경제 이론에 힘입은 바 크다. 90년대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서도 ‘작은 정부’의 기조는 흔들리지 않았다. 클린턴 대통령 자신조차 퇴임 전 마지막 국정 연설에서 “큰 정부의 시대는 갔다”며 프리드먼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19세기부터 20세기 미국 경제사를 다룬 800페이지 분량의 방대한 ‘미국 통화사’를 통해 통화량이 인플레를 결정하며 대공황은 ‘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연방 중앙은행이 통화량 조절에 실패해 발생한 ‘정부의 실패’임을 밝히는 등 학문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뉴스위크 칼럼니스트, PBS TV 경제 특강 ‘선택의 자유’(Free to Choose) 등을 통해 어려운 경제 이론을 일반에게 쉽게 설명하는 데는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의 이런 책들은 서방은 물론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동구권까지 밀반입돼 1989년 이후 이들이 자유 시장 경제를 건설하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그는 경제학자지만 그의 관심은 사회 전 분야에 미쳤다. 그는 앨런 그린스팬 전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 의장과 함께 개인의 자유의사가 아닌 공권력에 의한 병역 의무 부과를 반대하고 자원병제로 바꿀 것을 주장해 이를 실현시켰다. 그는 또 미국 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학부모에게 학교 선택권을 주는 것임을 일찍이 파악하고 50년 전부터 이를 주창했다. 학생과 학부모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갈 수 있는 미국 대학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인데 자기가 사는 집 근처 학교에 강제로 가야 하는 중고등 교육은 엉망이라는 것보다 그의 주장이 옳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없다.
그는 모든 자유가 끊을 수 없는 고리로 연결돼 있으며 어떤 한 분야의 자유에 관한 공격은 다른 모든 자유에 관한 공격임을 꿰뚫어 봤다. 지난 100년간 그만큼 자유의 확산을 위해 치열하게 싸운 지식인도 드물다.
그런 그가 16일 9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마거릿 대처와 조지 W 부시, 아놀드 슈워제네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치인이 그에게 진 지적 빚을 인정하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모든 권력자는 오랜 전 죽은 경제학자의 노예”라던 케인즈의 말이 떠오른다. 그의 명복을 빈다.
<민 경 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