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가주 시에라 산맥 동쪽에 있는 비숍 인근은 지금 단풍이 한창이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눈을 인 산 봉우리 사이사이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애스핀 나무 잎들. 그 근처 여기저기 널려 있는 호수와 그 위를 떠도는 오리 떼들.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인상적인 것은 LA에서 4시간 동안 차를 몰고 올라가는 동안 펼쳐지는 경치의 황량함이다. 텅 빈 허허벌판에 드문드문 잡초들만 무성하고 인적이 보이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지금은 좀 수그러들었지만 한 때 전 세계가 ‘인구 폭탄’ 공포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생물학자 폴 얼릭은 1967년 미국 인구가 2억을 돌파하자 “미국이 인구가 늘어난다고 자랑하는 것은 암 환자가 암세포가 늘어난다고 좋아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닉슨 대통령 또한 1969년 “앞으로 또 1억 명이 늘어나면 이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가르치며 돌 볼 것인가”고 걱정했다.
인구 폭탄에 대한 공포는 미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었다. 70년대 들어 세계 각국이 더 이상 인구가 늘어날 경우 자원은 고갈되고 아사자가 속출하며 문명 자체가 존립하기 어렵게 된다는 보고서가 쏟아져 나왔다. 따지고 보면 인구 폭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것은 최근 일이 아니다. 19세 초 영국의 맬더스는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며 기아와 빈곤, 질병은 인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그 후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세계 인구는 수 십 배가 증가했음에도 인류 전체의 생활수준은 과거 어느 때보다 향상된 상태다. 선진국의 보통 국민들은 냉장고와 에어콘, TV와 컴퓨터, 셀폰과 자동차를 필수품으로 여기며 과거 어느 왕과 귀족보다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물론 아직도 제3세계의 많은 이들이 문명의 혜택 없이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산업 혁명 이전에는 극소수 상류층을 제외하고는 모든 나라 모든 국민이 그런 상태였다. 기술 혁신이 인류를 그런 고통에서 해방시켜 준 것이다.
인류 역사는 인구가 늘어나면 자원이 고갈되고 자원이 고갈되면 재난이 닥친다는 통념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인류가 처음 지상에 출현 했을때 인류 조상의 숫자는 수 백 명을 넘지 않았을 것이며 그 후 수 백 만년 동안 이 숫자는 크게 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이 넓디넓은 대자연 속에서 풍요를 만끽하며 살았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하루 온 종일 맹수의 위협에 쫓기며 식량을 구하러 다녀도 배를 채우기 어려웠으리라.
인류가 처음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보장받게 된 것은 농업 기술의 개발로 대규모 영농이 가능해지면서다. 그와 함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문명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 많은 인구와 잉여 생산물의 존재가 노동의 분화를 가능케 했고 그것이 모든 분야에서 기술 개발의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기원전 3,000년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인구는 그 후 보합세를 유지하다 18세기 이후 다시 급증하기 시작한다. 두 말할 것 없이 산업 혁명으로 인한 기술 발달로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자원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창조하는 것이다. 19세기 이전까지 석유는 재산이 아니라 골치 덩어리였다. 고약한 냄새가 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유전 근처에는 아무도 가려 하지 않았다. 이를 에너지원으로 개발해낸 인간의 두뇌가 가치 있는 상품으로 만든 것이다.
미국 인구가 3억을 넘어섰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또 다시 해묵은 인구 폭탄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오히려 장기적인 미국의 번영을 알리는 청신호로 봐야 한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는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는 한결 같이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들이다. 단지 인구가 많으냐 적으냐가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두뇌를 어떻게 개발해 인류를 풍요롭게 할 기술 혁신을 이뤄내느냐가 포인트다. 인간은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임을 기억하자.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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