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의 주도 덴버의 별명은 ‘마일하이 시티’다. 시청이 해발 1마일 지점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보울더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로키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이 마을은 미국에서 가장 공기가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곳의 하나다. 로키의 영봉에 둘러싸인 이 곳에 서면 대자연의 웅장함이 절로 느껴진다.
해마다 7월이 되면 이 곳에 전국 자연재해 전문가들이 모여든다. 콜로라도 주립대 자연재해센터가 주관하는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그리고는 미국에서 가장 큰 자연재해가 닥칠 예상 지역에 관한 투표를 한다. 미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로 평가받고 있는 뉴올리언스의 침수도 이미 오래 전 여기서 예견됐었다.
뉴올리언스의 홍수를 예견한 것은 자연재해센터만은 아니다. 지금은 무능의 상징으로 비난받고 있는 연방 재해관리국(FEMA)도 9.11 이전 미국이 당면한 3대 위협으로 뉴욕의 테러 공격,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뉴올리언스 허리케인을 꼽았다. 휴스턴 크로니클지는 2001년 12월 이중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것이 허리케인이 뉴올리언스를 강타하는 시나리오라며 그럴 경우 어떤 사태가 발생할 것인지에 관한 특집기사를 내보냈다. 이 예상은 지난해 8월29일 뉴올리언스가 허리케인에 두들겨 맞으면서 거의 그대로 들어맞았다.
전문가들은 이제 어떤 지역이 얼마나 자연재해 위험을 안고 있으며 만약의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를 알아 맞추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정말 힘든 것은 지역 주민들과 정부 기관으로 하여금 사전에 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게 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루이지애나는 다른 어떤 주보다 많은 재해대책 자금을 받았지만 이를 댐 정비 등 꼭 필요한 일은 놔두고 엉뚱한 데 흐지부지 써버리고 말았다. 댐이 터진 후에도 연방 및 주, 시 정부는 신속히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구호품을 전달하는 일을 돕기는커녕 일률적인 구호체제를 마련한다는 이유로 적십자 같은 비영리단체나 월마트 같은 기업들이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는 일을 방해하기에 급급했다.
카트리나에 대한 늑장 대처로 부시 대통령 혼자 욕을 바가지로 먹었지만 부시 말대로 “모든 레벨의 정부가” 적절한 대응에 실패했다. 대응 실패는 사건 발생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아직까지 뉴올리언스에는 복구되지 않은 동네가 산재해 있다.
댐도 카트리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기는 했으나 다시 폭풍이 닥치면 어떻게 될 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당국자 얘기다. 100년만에 한번 올까 말까 한 허리케인이 와도 견딜 수 있게 지을 수는 있지만 예산 부족으로 그렇게 못한다는 것이다. 바다를 메워 나라를 세운 네덜란드의 댐은 1만년에 한번 올 폭풍에도 견디게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준비를 안 하고 있는 것은 개인도 마찬가지다. 미국민의 90%는 폭풍과 지진, 허리케인 등 자연 재해 위험지대에 살고 있다. 미국을 강타한 10대 자연 재해 중 8개가 태풍으로 인한 것이지만 그 위험 지역 주민 중 홍수보험을 제대로 든 사람은 20%밖에 안 된다. ▲카트리나 같은 큰 재난은 내가 사는 곳에는 오지 않을 것이며 ▲와도 나는 괜찮을 것이며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건 하늘의 뜻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태도라는 것이다.
올해 콜로라도 보울더에 모인 전문가들은 다음 닥쳐올 대재난으로 허리케인의 뉴욕시 강타를 꼽았다. 대형 허리케인이 뉴욕을 찾아오는 것은 시간문제고 그렇게 될 경우 피해 규모는 뉴올리언스의 2배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에 대한 준비는 전무한 형편이다.
29일 카트리나 1주년을 맞아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그 교훈을 놓고 모두 한마디씩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자연 재해에 대한 대비가 현저히 개선될 것 같지는 않다. 맹자 말대로 “인간은 항상 잘못을 저지른 후 반성하는” 존재인가.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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