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만큼 큰 배꼽 - 부가 수수료(Hidden Charge)
붙이려는 기업과 피하려는 소비자의 ‘영원한 전쟁’
호텔 룸안의 미니바 문을 열어보면 거기에는 항상 작은 위스키 병이나 맥주, 소다, 고급 초콜릿 등이 들어있다. 하버드대학의 싸비에르 가바익스 교수와 프린스턴 대의 데이빗 라이브손, 두 경제학자는 이런 상품들을 발견하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어떻게든 소비자에게서 추가적인 비용을 부과하려는 기업과 기업의 게임에 놀아나지 않으려는 소비자간의 전쟁은 영원히 계속되고 있구나“ 호텔 방값에 더 붙은 전화료와 룸 서비스 차지, 몇 개만 사면 프린터 값에 맞먹는 잉크 카트리지, 은근 슬쩍 붙은 한달 요금 수준의 셀폰 개통료 등등. 기업들이 소비자 눈에 안 띄게, 또는 숨겨서 붙여먹는 추가 비용(Hidden Charge)은 두 경제학 교수의 연구심을 언제나 자극했다. 갖가지 명목으로 추가비용을 차지하는 기업들의 상술을 해부한 뒤 내린 결론은 이렇다.
기업들이 가능한 추가 비용을 더 붙여먹으려 드는 것은 거의 본능적이다. 기업의 이런 행동에 대해 반응하는 소비자들은 두 부류. 똑똑한 소비자들은 기업의 이런 게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덫을 피해가며, 순진한 소비자들이 추가적인 비용을 대신 내준다.
이런 현실에서 소비자들은 약지 않으면 안된다. 두 교수는 가장 스마트한 소비 전략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숨긴 비용이나 부가적인 서비스가 많이 붙은 것을 구입하되, 추가 품목을 사지는 않는다.”
휴레트 패커드(HP)는 프린터는 아주 저렴하게 팔고 잉크 카트리지를 비싸게 팔아 돈을 남겨 먹는다. 잉크가 프린터 가격의 거의 절반이다. 싸게 파는 듯 앞에서 선전하고 뒤로 빼먹는 식이다. 은행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본다. 낮은 이자율을 제공하는 은행이라고 선전하면서 수수료에서 상당히 많은 이익을 올린다.
‘약은’ 소비자들은 그런 부가적인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지 않지만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순진한’ 소비자들은 대부분 넘어간다. 결국 이들이 비용을 떠안는다.
소비자들은 온갖 곳에 수수료가 붙는 것을 본다. 셀폰과 크레딧 카드 청구서, 메일오더 청구서, 뮤추얼 펀드 명세서, 자동차 렌탈, 호텔 비용 명세서. 어디를 보든 각종 명목의 수수료가 붙어있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그런 것을 잘 보지도 않거나 너무 늦게 발견한다.
이런 ‘숨겨진 비용’은 사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있을 수가 없다. 경쟁업체들이 타당치 않은 비용이라고 신고함으로써 자연 소멸되게 된다. 예를 들어 메이엇 호텔은 힐턴이 파킹료와 전화비를 비싸게 추가 부담시킨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고자질’해줘야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완전한 자유경쟁 시장이라면 숨긴 비용은 소멸돼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시장은 숨긴 비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할인세일을 제공하는 동시에 경쟁업체서 히든 차지를 많이 한다고 소비자에게 고자질(또는 계몽?)하는 광고를 하는 경우, 바라는 것과는 달리 손님을 경쟁업체로 안내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고 이 연구는 지적한다.
예를 들어 A호텔이 추가 수수료 없이 100달러라고 선전을 하면서 라이벌인 B호텔은 룸을 70달러 받으면서 각종 수수료를 붙여 145달러를 차지한다고 선전하는 경우. 약은 소비자라면 B호텔로 가서 수수료가 추가되는 서비스를 제외시킴으로써 A호텔에 숙박하는 것보다 더 싸게 지낸다.
B호텔이 나쁘다고 교육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손님은 B호텔로 뺏긴다. 안내만 해준 꼴이다.
원가 이하 세일에서 기업 자신은 손해를 보지 않는다. 누가 비용을 지불하는가. 어리숙한 소비자가 똑똑한 소비자의 비용을 대신 내 준다.
세일 가격 75달러인 호텔 룸. 실제 원가가 100달러라고 가정하자. 김씨는 75달러로 체크인 한 뒤 미니바와 전화, 주차 서비스를 이용해 추가로 70달러를 썼다. 이 부가품목에 대한 호텔 측의 실제 비용은 20달러.
이씨는 목이 컬컬했지만 미니바에서 맥주를 꺼내 먹지 않았고, 자기 핸드폰을 썼고 대중교통편을 이용했다. 원가 이하로 숙박을 했고 호텔은 이씨에게서 25달러를 손해 봤다. 반면 이씨는 비싼 추가서비스로 호텔에 과외의 25달러 이익을 안겨줬다. 원가 이하 세일로 호텔은 손해 보지 않았고, 약은 고객의 비용을 순진한 고객이 대납해 줬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제 소비자들이 선택해야 할 전략이 나온다. 추가 서비스를 많이 숨겨놓고 원가이하 대폭 할인을 해주는 회사 제품을 구입하되 추가 품목을 일절 사양하는 것이다. 소비자를 바보로 벗겨 먹으려는 기업과의 영원한 전쟁에서 이기는 최선의 전략이라고 라이브손 교수는 말한다.
순진한 소비자들의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이런 염가 할인은 너무 알려져 누구나 추가 서비스를 구입하지 않으려들면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러나 다수의 소비자들은 잘 살피지도 않고, 또 약은 소비자라도 가끔 방심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언제나 슬쩍 올려 붙여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들은 계속 ‘히든 차지’를 개발하기 때문에 이 전쟁은 영원히 계속된다고 가바익스 교수는 말한다.
또 기업들은 어디에 비용을 숨겨먹는지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HP가 자사 웹사이트에 한 페이지당 프린트 비용이 얼마인지를 올리지는 않는다. 소비자 자신이 여기저기서 정보를 얻어서 계산해 봐서 저럼한 프린터를 찾아내야 한다. 똑똑한 소비자는 품도 좀 팔아야 한다.
<뉴욕타임스 특약- 케빈 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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