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부산의 적십자사 난민촌에 머물 당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부산 시내 관광을 나섰던 피터 누엔.
공산치하 탈출서 미국까지
은인 전제용씨와 첫 통화
“나 때문에 해직당했었다니”
봉사하고픈 마음에 직업 간호사 택해
직장 한인동료통해 한국의 전씨와 연락
드디어 오늘 재회
1987년 11월. 미국에 도착한 나는 어떡해서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다. 의지할 만한 이는 미국 땅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언어도 큰 문제였다. 한인 이민 1세 여러분들도 당시 내 심정이 어땠을 지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다행히 사회보장 프로그램 덕에 미국에 대해 배우고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입도 조금씩 트이기 시작했다.
내가 택했던 직업 교육은 간호사였다(지금까지 첫 직장인 페어뷰 디벨롭멘털 병원에서 17년째 근무하고 있다). 혹자는 나이 마흔에 내가 선택한 직업이 왜 하필이면 간호사냐고 물어볼 지 모르겠다. 생면부지의 우리들을 끝내 외면하지 않았던 조건 없는 캡틴 전의 선택. 그의 희생정신을 함께 나눔과 동시에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직업이 간호사라는 생각에서였다.
92년 어느 날. 그토록 그리던 가족을 미국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온 가족이 함께 살 수 있게 됐다”라는 기쁨 하나만으로 그리움, 간절함 그리고 눈물로 점철됐던 지난 7년을 기억에서 지울 수 있었다.
이제 캡틴 전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여한이 없었다. 다시 만나고 싶었다. 아니 꼭 다시 만나야 했다. 그가 나에게 베푼 은혜에 보답해야 했으며 선장실에서 나눴던 그 위스키 잔을 다시 기울이고 싶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다만 일요일마다 온 가족이 모이면 그를 위해 기도하는 일이 전부였다.
그러던 터에 김순자(지금 그의 남편이 병석에 누워있다. 이 기회를 빌어 다시 한 번 쾌유를 빈다)라는 직장 동료가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혹 시간이 되면 캡틴 전을 찾아봐 줄 수 있겠냐”라고 부탁했다. “그러마”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혹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2002년 10월. 기다리던 낭보가 날아들었다. 김씨가 캡틴 전이 경남 통영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순간 손이 부르르 떨려 하마터면 전화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내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분명 꿈은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의사소통이었다. 나는 한국말을 하지 못했고 그는 영어나 베트남어를 하지 못했다. 결국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묻기로 했다. 비록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번역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의 첫 답장을 받아든 나는 너무나 미안해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못 본 척 하고 지나쳐라”는 회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던 그가 그 일로 해직을 당했었다는 것이다. “당신들에게 크나큰 마음의 짐을 지울까봐 말하지 않았다. 신경 쓰지 마라.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서 후회는 없다. 나는 잠깐 힘들었지만 당신들은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지 않았느냐. 그 걸로 됐다”
그가 오늘(5일) 나를 만나러 미국에 온다. 시간이 이렇게 더디게 느껴본 적은 처음이다. 그에게 무슨 말을 먼저 건네야 할까. 밤새 고민해봐야겠다. 오늘도 나는 밤새 잠을 뒤척일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나는 기쁘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우선 이번 캡틴 전과 나와의 재회에 애정 어린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고 있는 한인사회와 한국일보 독자 여러분들께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제2의 삶을 살게 해 준 것도 한국이라는 나라 덕분이고 전 선장과 나의 재회를 진심으로 축복해주고 성원해주는 것도 바로 여러분, 한인들이었다.
<정리·이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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