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모레가 환갑이라며 미소짓는 이해인 수녀의 얼굴은 열 일곱 소녀처럼 해맑다. ‘해인글방’에 터를 잡고 문서선교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녀는 오랜만에 찾은 LA에서 신자를 위한 신앙과 문화 특강을 마련하기도 했다.
최근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이란 제목의 수필집을 펴낸 이해인 수녀. 아무리 파내도 마르지 않고 솟아오르는 시심은 과연 어디에서 흘러나오는 것일까. 수도 생활과 맡은 소임에 충실하다 보면 아주 자연스레 글에 대한 단상이 떠오르는데 항상 주머니에 쪽지를 넣고 다니면서 이런 소중한 느낌들을 메모한다고 한다. 이런 조각 글들을 모아 10여 권의 책으로 엮어냈으니 ‘작은 불꽃 하나가 큰불을 일으키듯’이란 성경 구절은 바로 수녀님의 삶을 두고 한 표현인 것 같다. 와인을 숙성시키듯 생각들을 곰삭이는 시간을 지난 후 그녀의 조각 글들은 때로는 민들레로, 때로는 반달이 되어 다시 태어난다.
소녀시절,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간 언니를 방문하면서 접했던 수도원 생활은 전 존재를 걸만한 동경의 세계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얼굴 예쁘장하겠다, 글재주 출중하겠다, 걷지 않은 길 쪽에서 얼마나 시시때때로 그녀에게 유혹의 손길을 보냈을까. 수도 생활을 시작한지도 올해로 벌써 36년째. 어쩌면 수녀는 세상 사람들을 대신해 울고 웃어 주는 여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는 요즘, 그녀의 얼굴에는 깨달은 자의 잔잔한 미소가 늘 떠나질 않는다.
시인이자 수녀인 그녀는 어떻게 주말을 보낼까 궁금하다. 사계절 꽃이 지지 않는 부산 광안리 성베네딕도 수녀원의 앞뜰을 바라보며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편지와 이메일에 답장 쓰는 시간을 그녀는 소중히 생각한다. 수녀원 소식지 편집, 신앙 서적 번역, 신앙 상담, 학교 강의와 외부 특강으로 서태지보다 바쁜 일정이지만 항상 마음에는 평화가 넘친다.
가끔씩은 동료 수녀들과 광안리 바닷가를 함께 걷는다. 수영복 입고 있는 이들 틈 사이에서 온 몸을 꽁꽁 싸맨 수녀복 자락을 도포처럼 펄럭이고 다니다 보면 본의 아니게 구경거리가 되기도 한다. 바닷가에서 주워 온 조개 껍데기에 나무와 꽃을 그려 넣고 사랑, 온유, 평화... 이렇게 아름다운 단어를 써 만나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나눠준다. 수녀원 밭에 마늘과 호박을 심고 잡초를 뽑는 노동의 시간은 즐겁다. 주말에는 동료 수녀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그 좋아하는 고전 음악도 감상하며 달콤한 오수를 즐기기도 한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카드 한 장 드릴께요." 그녀는 검은 색 가방을 뒤져 마른 꽃잎을 붙여 만든 카드와 색연필, 그리고 갖가지 스티커들을 꺼내든다. 단아하게 앉아 색연필로 꽃을 그려 넣고 스티커를 붙이며 카드를 장식하는 그녀의 모습이 소녀처럼 어여쁘다. 선물로 받은 조개껍데기에서 광안리의 바다냄새를 깊게 들이쉬면서 시만큼이나 맑고 깨끗한 이해인 수녀의 삶의 향기를 호흡할 수 있었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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