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초창기에는 힘든 조건들을 헤쳐 나가기 위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야만 했던 시절이 내게 있었다. 그렇게 쏜살같이 흘러간 세월은 어느새 은퇴라는 조금은 섭섭한 단계에 이르게 했다. 그러나 그 또한 웬만큼 지나고 보니 이젠 모두가 느슨해진 안정권에 들어선 느낌이다.
분주함에서 해방된 자유의 시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연륜과 함께 마음 한켠에 자리한 떠나온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관심은 애국심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오늘은 흥사단 뉴욕 지부 주최로 뮤지컬 독립영화 ‘호조(互助)’를 관람하기 위해 퀸즈 플러싱에 위치한 프라미스교회로 향했다. 예배당 입구에 들어서며 설교 제목인 듯한 ‘신앙과 애국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문구를 보고, 나 역시 깊이 공감하며 본당으로 들어섰다.
한국의 권혁만 감독이 광복 8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한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라는 짙은 어둠 속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도산 안창호 선생과, 정동교회 담임목사라는 안정된 자리를 내려놓고 스스로 ‘걸레 목사’를 자처한 손정도 목사의 희생적인 삶을 다룬 작품이다.
영화는 일제의 탄압으로 수많은 동포가 고통받던 1920년대 전후의 만주와 상하이 임시정부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평양에서 비밀결사 ‘신민회’를 조직하며 헌신적으로 독립운동의 기틀을 다지는 지도자 안창호, 반면 헐벗은 동포들을 구제하기 위해 거친 만주 땅으로 떠난 손정도 목사의 행보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두 선각자의 찬란한 우정은, 각자의 위치에서 방식은 달랐지만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존엄이라는 대의 앞에서 깊이 교감한 숭고한 철학적 만남이었다. “정의가 없는 사랑은 세상을 바꿀 수 없소.” (안창호 선생) “나라 꼴이 기막히니, 나는 걸레가 되겠소.” (손정도 목사)
이같이 이성과 정의를 바탕으로 민족의 뼈대를 세우고자 했던 안창호 선생의 철저한 조직력과, 남들이 꺼리는 가장 낮은 곳에서 동포들의 눈물을 닦아준 손정도 목사의 헌신적인 사랑이 만나 독립투쟁의 험난한 여정 속에서 겪는 고뇌와 뜨거운 우정이 강렬한 춤과 노래를 통해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이 무거운 항일투쟁의 역사는 두 영웅의 뜨거운 심장 박동과 애절한 애국의 외침으로 다가와 가슴 뭉클한 감동의 시간이 되었다.
영화 후반부에서 안창호와 손정도는 만주 길림성에 굶주리고 유랑하는 동포들이 자립할 수 있는 공동체, 이른바 ‘이상촌’을 건설하기로 결의한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호조(互助)’는 글자 그대로 서로 돕는다는 뜻으로, 1913년 민족운동단체 흥사단(興士團)을 창립한 안창호 선생이 민족에게 심어주고자 했던 핵심 정신이기도 하다. 역동적이면서도 슬픔이 배어 있는 노래를 통해 울려 퍼지는 그들의 간절한 소명은 이기주의와 갈등이 만연한 현대 사회에 큰 시사점을 던진다.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두 선각자의 빛나는 우정의 기록인 이 영화를 통해, 안창호와 손정도 두 분의 기독교적 선한 희생이 가슴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나 역시 내 삶의 자리에서 ‘서로를 살리는’ 세상이라는 호조의 위대한 정신을 실천할 수 있기를 깊이 고민하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또한 이는 조국을 떠나 먼 타국에서 조국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우리 모두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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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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