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부터 5년간 의대 정원을 연평균 668명 늘리겠다는 정부의 발표 직후 열린 대한의사협회의 브리핑 현장은 묘한 긴장감과 의외성이 교차했다.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회의 도중 표결을 거부하고 퇴장했던 김택우 의협 회장은 깊은 유감을 표하면서도 “총파업 불사” 같은 과격한 구호를 꺼내지 않았다.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취재진 사이에서 머쓱한 분위기마저 감돌았을 정도였다.
대통령 지시로 ‘2000명 증원’을 밀어붙였던 2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의 풍경은 사뭇 생경하다. 2031학년도까지 연평균 668명 증원이라는 결과물을 두고 환자단체는 “의사 눈치보기 식 축소”라며 날을 세웠고, 의료계 내부에서는 “안이한 대응”이라며 집행부 사퇴론까지 불거졌다. 하지만 의협은 이틀 뒤 브리핑에서도 “교육 가능한 선에서의 조정”을 언급했을 뿐 거리로 나가겠다는 말은 아꼈다.
변화의 핵심은 ‘명분’에 있다. 이번 결정은 의료계 인사가 과반을 차지하는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의 과학적 추계를 토대로 도출됐다. 정부는 지난 1년간 12차례의 수요·공급 시나리오 검토와 7차례의 보정심 논의를 거치며 의료계에 반대할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부단히 공을 들였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던 정부의 전례 없는 시도가 투쟁의 동력을 합리적 논의로 치환한 셈이다. 2년 넘게 치른 혹독한 사회적 비용이 헛되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에 반갑기까지 하다.
정부가 일방적인 통보 대신 거버넌스를 통한 설득의 자세를 보인 만큼 의협도 달라져야 한다. 의대 증원은 결코 의료 개혁의 종착역이 아니다. 촌각을 다투는 환자가 길 위에서 숨지고, 산부인과를 찾아 원정 출산을 떠나는 비극을 멈춰 세워야 하는 엄중한 과제의 서막일 뿐이다.
필수의료 인력 확보와 지역 의료 격차 해소라는 지향점 앞에 정부와 의사는 적이 될 수 없다. 어렵게 마련된 합의의 물꼬가 헛되지 않으려면 이제는 숫자를 넘어선 후속 과제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정부가 변화의 물길을 텄으니 의협도 이번만큼은 달라진 위상을 보여줄 때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이기는 의사가 아니라 곁에 있는 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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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진 / 서울경제 바이오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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