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鄭和)는 중국 윈난성의 무슬림 집안에서 태어났다. 원(元) 정벌에 나선 명(明) 태조 주원장의 군대에 잡혀 열 살 때 포로가 됐다. 명나라 관례대로 적국 소년은 거세당했다. 명석했던 소년은 조정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의 탁월한 능력을 간파하고 발탁한 사람은 영락제였다. 국가 부흥을 내건 황제는 1405년 대규모 항해를 강행했고 총애하던 환관 청년을 총사령관에 임명했다.
인도양을 가로질러 남아프리카까지 진출했던 국가 프로젝트 ‘정화의 원정(遠征)’은 그렇게 닻을 올렸다. 정화 원정대는 317척의 배로 구성됐다. 당시 스페인 무적함대의 배가 130척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압도적인 규모다. 정화는 지상 최대의 선단을 앞세워 해상 무역을 장악해 나갔다.
하지만 찬란했던 영광도 잠시, 조정의 당파 싸움과 정쟁에 휘말렸다. 미래 수익을 위해 항해를 계속해야 한다는 ‘혁신’ 세력과 비용 부담이 크다며 중단해야 한다는 ‘수구’ 집단이 맞섰다. 영락제 아들인 혼군(昏君) 홍희제는 후자의 손을 들어줬다. 원정 기록은 은폐되고 사장됐다.
이후 중국은 18세기 말까지 국경 밖 먼 곳으로 배를 보내지 않았다. 15세기 광풍처럼 휘몰아친 유럽의 대항해 시대에 밀려 중국은 쇠락의 길로 내몰렸다. 단명한 정화의 원정은 국가 미래가 걸린 중차대한 과제라도 이를 뒷받침하는 법과 제도, 추진력이 없으면 허망한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실증한다.
현대차가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아틀라스’를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 메가팩토리에 투입하고 향후 피지컬 인공지능(AI) 분야까지 진출한다는 야심찬 구상을 선언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휴머노이드를 ‘흘러오는 거대한 수레’에 빗대며 “어차피 올 세상이면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는 “노사 합의 없이는 단 한 대의 로봇도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며 막무가내 태도다. 미국 테슬라가 전기차 공장을 휴머노이드 ‘옵티머스’ 제조 라인으로 전환하고 생산 규모도 대폭 늘리는 것과는 딴판이다. 현대차 노조는 급변하는 기술 진화에 맞춰 회사와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상생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데 고압적 자세 일변도다. 3월 시행되는 ‘노란봉투법’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어서다. 이 법의 해석지침은 ‘근로조건의 실질적 변동을 초래하는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에 따른 전환 배치 등은 교섭 대상이 된다’고 못 박고 있다. 노란봉투법이 아틀라스 혁신을 봉쇄하는 ‘법적 방패’가 되는 것이다.
비단 현대차만의 문제일까. 피지컬 AI 시대 도래로 철강과 조선·석유화학 등 제조업 전반에 휴머노이드 투입이 뉴노멀이 될 텐데 우리 법과 제도가 ‘동굴의 우상’에 갇혀 있다면 기업 혁신도 경제성장도 기대 난망이다. 원가를 낮춘 로봇을 투입해 노동생산성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는 중국 등 주요국과 무슨 수로 경쟁하겠는가.
정책 방향은 올바른데 잘못된 법과 제도 탓에 실행이 힘든 전형적인 ‘구성의 오류’다. 의사와 약사들의 반대에 좌절된 비대면 진료와 의약품 배송, 택시 업계 기득권에 밀린 승차 공유 서비스, 기존 관광 업계와 충돌한 공유 숙박, 자율주행차 규제 등도 글로벌 흐름과 동떨어진 제도가 혁신의 싹을 자른 악수(惡手)다. 골목상권 보호 명분으로 대형마트의 휴일 근무와 새벽 배송을 제한한 유통산업발전법이 괴물 쿠팡의 폐단을 초래하고 오히려 시장 구조를 왜곡시킨 사례에서 귀한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는 초격차 기술과 혁신 모델이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과 창의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라도 이를 든든하게 받쳐줄 제도와 정책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바람(경쟁력)을 잡겠다면서 성긴 그물(규제)을 들고 백방으로 뛰어봤자 헛심만 쓸 뿐이다. 정부의 정책 한 줄, 국회의 입법 하나가 국력이고 국가 경쟁력인 시대다.
미국과 중국·일본·유럽연합(EU) 등 주요 경쟁국이 천문학적인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덩어리 규제를 걷어내며 기업의 ‘치어리더’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현실을 꿰뚫어봐야 한다. 세계화와 공존의 틀이 깨진 지금의 글로벌 경제는 ‘비교 우위’가 아닌 ‘절대 우위’ 기술을 가진 기업과 국가만이 살아남는 마키아벨리식 무한 투쟁의 장으로 변했다. 왜곡된 기득권 논리와 정치 이념이 한 방울이라도 경제정책에 섞이는 순간 경쟁에서 도태되고 만다.
우리 기업들의 야심찬 ‘아틀라스 항해’가 정책 실패로 끝난 ‘정화의 원정’ 길을 따르지 않고 거친 파고를 헤쳐갈 수 있도록 ‘규제 닻’을 과감히 제거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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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명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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