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네. 지난달까지만 해도 그렇게 지지배배 합창을 해대더니만··. 얼마 전부터 새들의 출현이 뜸해졌다는 생각이 스쳤다. 두 달 전쯤 뒷마당 맨땅에 뒤집힌 채로 놓여 있던 새 둥지를 발견하고부터 나는 새가슴이 된 것 같다. 정성 들여 만든 둥지를 팽개치고 떠날 만큼 급박한 사정이 있었던 건지, 그렇다면 그 사정이란 게 무엇이었을지. 우리 집에 둥지를 트기로 맘먹은 새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 게 아닐까, 궁금증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거다.
나이만 쌓아가고 있나 싶어서 나 혼자 괜히 미안해질 때가 있다. 세상사 부조리한 사건들에 분노하면서도 무기력한 내가 한심해서 미안함과 부채감을 느낀다. 그런 내 안에는 아주 오래 묵힌 빚 같은 기억이 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건만 오직 나만이 느끼는 빚진 마음 같은 거다. 1987년 이후 세상에서는 사라졌지만 내내 나의 기억을 점령하고 있는 이름, ‘부산 형제복지원’. 제5공화국 시절의 부랑인 강제수용소. 딱 한 번 방문했을 뿐인데 40년이 지나도록 느닷없이 슬픔으로 떠오르곤 하던 곳이다.
80년대 초 겨울방학, 중학생이던 나는 교회의 인솔하에 여럿이서 형제복지원을 방문했다. 기다란 테이블이 즐비한 거대한 식당 방에서 난생처럼 식판에 담은 밥을 먹었다. 씹을 것도 없이 삭아버리는 듯한 식감의 누런 밥, 시어빠진 깍두기 몇조각, 물 백 잔에 된장 한 스푼 풀어 끓인 듯한 국물이 다였다. 1인당 한 끼에 이십 원 비용을 쓴다고 들은 것 같은데 가물가물하다. ‘사람 먹는 음식이 맞나’ 싶었다. 구역질이 올라오는 걸 참고 몇 숟갈 먹다 말았다. 이후로 웬만해선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못 먹을 밥을 먹은 기억 때문에.
식사 후에는 숙소를 둘러보았다. 성별 구분이 안 되는 짧은 머리의 여윈 사람이 안내를 해주었다. 한겨울인데 손목 위까지 드러난 얇은 옷을 입고 있어서 코트를 입은 내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방마다 마치 닭장 같은 철제 침대가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수십 명 아이들의 눈이 뿌연 겨울 햇살을 담고 외부인인 우리를 맞았다. 그날 어쩌면 나와 눈이 마주쳤을 그녀나 그의 고통을 모른 채 나와 일행은 포근한 집으로 돌아왔다. 옆 옆 동네에서 나 같은 아이들이, 죄 없는 사람들이 인간다움을 부정당한 채 살고 있었는데 깡그리 모른 채.
형제복지원은 부랑인을 선도하는 사회복지시설이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경찰과 국가 권력이 결탁해 운영한 수용소였다. 길 가다 붙잡힌 행려자, 가출 청소년, 노숙자, 학생이나 꼬마들까지 강제노역과 굶주림, 구타, 성폭력 속에서 고통받았다. 500명 이상이 죽음을 맞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사회의 주변부에서 근근이 삶을 유지하거나 정신적^육체적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왔다.
다행히 지난 8월 5일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에게 국가가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났고, 최종적으로 법무부가 받아들였다. 국가를 상대로 피해 생존자들이 싸워온 결실을 보게 된 것이어서 오랜 속앓이가 아주 조금 가라앉는 느낌이다. 최근에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이다. 너무 아픈 이야기라서 보기가 괴롭지만 피해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미안하다”라는 말 한마디를 듣고 싶다고 했다.
진심을 담은 한마디, “미안합니다!”
<
성영라 수필가 미주문협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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