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텐부르크 오프 데어 타우버의 엽서 같은 거리-플뢴라인.
독일을 여행하다 보면 이름이 같은 도시를 만난다. 로텐부르크 오프 데어 타우버(Rothenburg ob der Tauber)와 로텐부르크 암 네카(Rottenburg am Neckar), 두 도시는 200km 남짓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 다른 시간의 리듬으로 숨 쉬고 있다. 하나는 중세의 요새 도시이고, 다른 하나는 소박한 강변 도시다. 이번 여정은 그 두 도시를 하나의 긴 산책처럼 연결해보는 인문학적 시간이었다.
네카 강변의 소박한 하루 - 로텐부르크 암 네카르
토요일 아침, 로텐부르크 암 네카르의 장터는 오래된 일기장을 펼친 듯 조용히 열린다. 유기농 채소와 수제 치즈, 바질 한 줌을 쥔 노부인의 손끝에서도 이 마을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트럭에서 풍겨오던 빵 냄새였다. 포카치아와 피자를 사서 광장 분수대에 앉아 한 입 베어 문 순간, 따뜻한 맛이 가슴속까지 깊게 퍼졌다. 광장 한가운데엔 분홍빛 시청사가 있었고, 마침 신혼부부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독일에서는 시청사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일이 많다. 겉치레 없어서 오히려 더 진심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광장 끝에는 13세기에 지은 성 마르틴 대성당이 있고, 그 안의 피에타 상과 목조 조각들은 믿음을 넘어선 조용한 예술로 다가왔다. 이 마을에선 관광보다 삶이 먼저였다. 이름보다 기억이 오래 남는 곳, 그 하루는 그렇게 조용히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타우버 강 위의 붉은 요새 - 로텐부르크 오프 데어 타우버
반면 로텐부르크 오프 데어 타우버는 매년 200만 명의 여행자가 찾는다. 마치 16세기에 머문 듯한 풍경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트 광장에는 시청사와 연회관, 노천 레스토랑이 어우러져 있고, 울긋불긋한 목조 건물들이 중세의 스카이라인을 완성한다. 시청사 탑에 오르려면 220개의 나무 계단을 천천히 올라야 한다.
엘리베이터는 없다. 숨을 고르며 올라야 하는 이 계단은 여행자가 도시를 품기 전 치러야 할 작은 통과의례 같다. 탑에 오르면 붉은 기와지붕이 격자처럼 얽힌 로텐부르크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이럴 때야말로 “고풍스럽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
한 잔의 전설, 한 도시의 기억
정각이 되면 시의회 연회관 창문이 열리고, 목각 인형들이 등장해 와인을 마시는 장면이 펼쳐진다. 이는 ‘마이스터트룽크(Meistertrunk)’, 즉 ‘위대한 들이킴’이라는 전설을 기념하는 퍼포먼스다. 30년 전쟁 당시, 가톨릭 연합군이 이 개신교 도시를 포위했을 때, 사령관은 “3.25리터 잔의 와인을 단숨에 비우는 자가 있다면 도시를 살려주겠다”고 말했다.
시장 누쉬는 주저 없이 와인을 들이켰고, 이후 사흘간 잠들었다. 이 전설은 오늘날에도 축제로 이어져, 도시의 자부심이 되고 있다. 엽서와 가이드북에 빠지지 않는 ‘플뢴라인’의 풍경도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다홍빛 지붕, 돌바닥에 부서지는 햇살은 마치 한 편의 동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게테 볼파르트’ 본점과 크리스마스 박물관, 중세 범죄 박물관, 제국 도시 박물관까지, 도시 전체가 중세의 숨결을 품은 살아 있는 박물관처럼 흐르고 있다.
도시를 구한 결정 - 전쟁과 선택
이 아름다움이 무너질 뻔한 순간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군은 로텐부르크를 방어 거점으로 삼았고, 미군은 전면 폭격을 예고했다. 그러나 미군 차관보 존 맥크로이는 이 도시의 가치를 이해하고, 독일군 사령관에게 경고했다. “3시간 내 철수하지 않으면 폭격은 피할 수 없다.” 독일군은 철수했고, 로텐부르크는 기적처럼 지켜졌다. 존 맥크로이는 이후 로텐부르크의 명예시민이 됐다.
그가 지킨 것은 단지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인류의 기억과 문화유산이었다. 로텐부르크 오프 데어 타우버는 단순히 사진이 예쁜 도시가 아니다. 이곳은 과거와 현재, 전설과 사실, 기억과 망각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고풍스러운 담장과 시계탑, 수세기 된 골목길은 중세의 흔적을 넘어, 우리가 무엇을 지키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로텐부르크는 하나가 아니었다. 이름이 같아도, 시간의 리듬은 달랐고, 풍경은 다른 숨결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독일 어딘가에는, 아직 내 발걸음을 기다리는 또 다른 두 개의 로텐부르크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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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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