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는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

서울 인사동 신상갤러리에서 열린 그림 전시회에서.
평생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던 그의 미국 생활에는 고향 안성의 흙냄새가, 그리고 대서양을 건너온 이민자의 숨결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주옥근 한미문화원장(91), 그는 장구한 세월,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뉴저지 한인사회를 환히 밝힌 등불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로서 그가 그만큼 화단과 뉴저지 한인사회에 뿌린 업적이 많기 때문이다.
■ 이민자들 외로움 달래는 사랑방
1987년,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미국 땅을 밟았을 때, 그는 이미 한국에서 수많은 글씨와 그림을 남긴 서화가였다. 그러나 낯선 미국 땅에 와서도 더 큰 꿈을 버리지 않았다. 주옥근 원장은 뉴욕과 뉴저지 곳곳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한미문화원과 미술단체를 이끌면서 한국문화 알리기에 적극 앞장섰다. 한미문화원, 그가 설립한 이 갤러리는 이민자의 외로움을 달래는 사랑방이었고, 젊은 예술가들의 꿈을 키워주는 무대이기도 했다.
주 원장은 봉사에 대한 열정도 누구보다 뜨거운 사람이었다. 그는 경로잔치에서 외로운 노인들의 손을 잡아주었고, 문화교류 행사에서 화합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다. 그의 열정과 헌신은 마침내 한국정부로부터 외교부장관 표창을 받기에 이른다. 그는 상 보다 사람의 마음을 더 귀히 여기는 생활로 주변에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의 그림세계는 한마디로 세월을 관통해온 믿음이자, 문화로 세대를 잇는 다리이며, 이민자의 뿌리를 지켜온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주 원장이 걸어온 수많은 이야기와 작품, 그리고 그 속에 숨은 봉사의 온기 등, 그가 남긴 문화유산을 들여다본다.
■문화의 다리를 놓다
미국에 발을 디딘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옥근 원장은 깨달았다. 이민자의 삶이 단순히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뿌리와 정체성을 지키는 싸움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싸움에서 이기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문화’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1990년대부터 뉴욕과 뉴저지를 오가며 미술 전시회를 기획하고, 서예·회화 강좌를 열었다. 그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9년도 한국미술협회 뉴욕지부장으로서 유엔본부 초청으로 유엔본부 카페에서 개최된 세계 49개국 한국 작가 전시회였다.
그때 전시는 미주대표로 주 원장이 참여했으며, 한국에서는 한국갤러리 오양우 관장이 작가 20여명을 데리고 와 같이 참여해서 멋진 전시회를 가진 것이다. 당시 전시회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축사를 해주었고, 유엔본부 한국대표부 박인국 대사가 축사와 함께 사무실로 초치해 극진한 대접으로 격려를 해준 것은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미문화원은 단순한 전시장이나 모임터가 아니었다. 그것은 문화의 터전이자, 예술가와 관객이 만나는 거실이었다. 그곳에서 신진 작가들의 첫 전시가 열렸고, 원로 예술가들의 회고전이 이어졌다.
한미문화원의 활동은 미주한인사회를 넘어 주류사회에도 파문을 일으키게 된다. 미국인 관람객들이 한지의 질감을 손끝으로 느끼고, 서예의 힘찬 획 속에서 낯선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다.
한미문화원 음악, 무용, 문학 행사까지 분야를 확대했다. 어린이 한글 글짓기 대회, 전통악기 연주회, 그리고 지역 어르신을 위한 경로잔치 등등… 주옥근 원장의 철학은 “문화는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다.”
■ 봉사와 사회공헌
주옥근 원장은 예술의 진수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숙이 전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전시회 수익을 지역 단체에 기부하기도 했고, 경로잔치나 지역 모임에서 작품을 경품으로 내놓기도 하였다. 그에게 봉사는 매일의 생활과 삶 속에 스며드는 자연스러운 습관이었다.
특히 한미문화원은 문화 행사와 봉사를 하나로 엮는 독특한 역할을 해왔다. 전시가 끝나면 관람객과 함께 모여 차를 나누고, 작품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모금 활동을 벌였다. 그 돈은 홀로 사는 어르신들의 난방비나 장학금으로 쓰이곤 했다. 주 원장은 말한다. “예술이 사람을 따뜻하게 하지 못한다면, 그건 껍데기일 뿐입니다.”
그의 봉사 행적은 지역사회에 깊게 각인되었다. 주 원장은 뉴저지와 뉴욕에서 열린 경로잔치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여했고, 외로운 노인들과 늘 함께 했다. 어떤 해에는 직접 한복을 입고 서예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그는 이런 공적을 인정받아 2016년, 제10회 세계한인의 날을 맞아 외교부장관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수상 배경은 ‘미주 한인사회 문화 증진 및 봉사에 지대한 공헌’이다.
주옥근 회장은 “이건 제 상이 아니라, 함께 걸어온 모든 사람들의 상이에요.”라고 말한다.
■ 신앙과 예술의 결합
주옥근 원장은 젊은 시절부터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왔고, 그림을 그릴 때마다 마음속 기도를 담았다. 감사와 간구의 표현이었다. 이런 내면의 신앙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를 나타낸 것이 그가 90세를 맞아 뉴저지 리버사이드 갤러리에서 가진 ‘성화 전시회’였다. 이 전시회에서는 성경 속 장면과 기독교 상징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소개됐다. 전시와 함께 그는 자신의 삶을 묶은 자서전 화문집도 출간했다. 제목 그대로 ‘주를 향한 신앙과 그림 인생’이 담긴 책이었다. 책 속에는 어린 시절 고향 마을에서의 추억, 이민 생활의 고난과 기쁨, 그리고 예술과 봉사로 채운 날들이 진솔하게 기록됐다.
주옥근 원장은 말했다. “제가 그린 그림은 결국 제 기도입니다. 제 기도가 모여 제 인생이 되었고, 그 인생이 누군가의 위로가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 말 속에는 그의 전 생애가 압축되어 있다. 예술은 그의 언어였고, 신앙은 그의 나침반이었다. 그리고 그 둘이 만나, 그는 미주한인사회 전체에도 빛을 밝게 비추는 역할을 하였다
■ 차세대에 물려줄 유산
주옥근 원장의 인생은 한 폭의 수묵화 같다. 그는 예술로 사람을 묶고, 봉사로 마음을 잇고, 믿음으로 삶을 채웠다. 한미문화원의 지난 발자취 속에는 그의 이름이 아니라, 그의 갤러리를 통해 함께 울고 웃었던 한인들의 얼굴이 가득하다.
그는 이제 고령의 나이로 한미문화원을 딸에게 이관은 했지만, 여전히 뒤에서 도우면서 차세대 문화전수를 위한 일을 조용히 잇고 있다.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하고, 문화의 다리를 놓으며, 자신이 추구하는 믿음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써 내려가기 위한 이유도 있다. 주 원장의 이 모든 활동 뒤에는 부인 주민자 여사의 내조도 큰 몫을 하고 있다.
타고난 예술성에 쉬지않고 작품활동$ 한평생‘문화 전도사’
■ 주옥근 원장
주옥근 원장의 예술 여정은 고향 안성의 들판과 골목에서 시작됐다. 그는 1934년, 가난하지만 따뜻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 글씨와 그림을 가까이하며 성장했다.
그는 이미 어릴 적부터 예술성이 타고남인지, 주변에 꽃과 나무, 한옥의 처마와 장독대, 그리고 사람들의 표정까지도 하나의 선과 색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는 1959년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에 이어 본 대학원에서 공예과를 전공한 정통 예술인. 그때로부터 한국의 서예와 회화를 본격적으로 배우며 기량을 다듬었다. 당시 그는 이미 지역 전시회와 미술 행사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작품 속에는 고향의 풍경과 사람들의 숨결이 진하게 스며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안주하지 않았다. 문화 예술로 다리를 놓으면, 그 다리는 어디든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미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모든 것이 어둡다 보니 그의 첫 미국 생활은 쉽지 않았고, 생계를 위해 연일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래도 그는 하루도 서화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쉬지 않고 작품생활을 이어갔다. 그의 그림은 주로 기독교에 담긴 사랑과 아름다움이었다. 차곡차곡 쌓인 작품들은 훗날 미국에서 연 첫 전시회의 씨앗이 되었다.
이런 배경의 모음은 마침내 주옥근 원장이 한미문화원장으로서 완전 발돋음하게 되는 첫 걸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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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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