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이야기 중 하나다. 조조, 유비, 그리고 제갈량 이 세 인물을 중심으로 한 영웅담은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소설, 드라마, 게임의 소재가 됐다.
그런데 정작 삼국의 역사는 얼마나 지속됐을까? 놀랍게도 위, 촉, 오의 삼국시대는 220년부터 고작 60년 정도에 불과하다. 개별로 보면 위는 46년, 촉은 43년, 오는 58년을 버텼을 뿐이다. 이 세 나라는 진나라에 흡수된 280년까지만 존재했으나, 우리는 삼국지를 마치 수백 년에 걸친 대제국의 역사처럼 기억한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삼국지를 역사보다 ‘서사’로 소비해왔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진나라의 역사학자 진수(陳壽, 233~297)는 『삼국지』를 편찬했다. 정통 역사서인 이 책의 제30권, 「위서 동이전」에는 3세기 당시 고대역사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다. 부여, 고구려, 동옥저, 읍루, 예, 한(마한, 진한, 변한), 왜 등 동아시아 동북부 지역의 고대 국가들의 지리, 정치, 사회, 문화 등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어 우리 고대사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14세기 말, 명(明)나라의 소설가 나관중(羅貫中)은 『삼국연의(三國演義)』를 지었다. 나관중은 진수의 『삼국지』에 민간전설과 상상력, 작가의 해석을 덧붙여 새로운 이야기로 구성했다. 여기서 유비는 도덕적 군주로, 조조는 냉혈한 권력자로, 제갈량은 신에 가까운 책사로 그려졌다. 이 인물들은 너무도 생생해서 실제 역사보다 더 강한 인상을 남겼다.
1569년 『조선왕조실록』의 기사에 의하면 조선에는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라는 번역본으로 전해졌다. 이 소설은 조선에서 양반사대부 부터 신분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 소설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전략과 리더십, 나아가 정치 철학의 교본처럼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삼국지는 군사학 교재가 되고, 기업 경영자가 인용하는 책이 됐다. 그렇게 허구는 사실을 덮었고, 현실보다 더 큰 진실처럼 취급됐다.
냉정히 보면 삼국은 후한 붕괴 이후 벌어진 짧고 불안정한 과도기 때로, 완성된 국가라기보다 불완전한 군웅 세력에 가까웠다.
수백 년을 유지한 발해나 가야는 물론, 특히 고구려·백제·신라처럼 긴 역사 속에서 독자적인 법제와 관료 체제를 갖춘 우리 고대 국가들과 비교하면, 위·촉·오는 그 기반이 지나치게 취약했다. 같은 ‘삼국’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그 무게차이는 너무 크다.
그렇다고 소설 삼국지가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 짧은 시대 안에는 인간의 본성과 권력의 민낯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혼란 속에서 생존을 꾀하는 권력자들, 명분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들, 이상과 권력 사이의 좁은 틈, 그 안에 오늘날의 정치, 기업, 사회의 모습이 있다.
다만 우리는 이제 삼국지를 ‘이야기’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로서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얼마나 찬란했는가보다는, 얼마나 불안정했는가를 묻고, 왜 그렇게 짧게 끝났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삼국지는 짧은 역사지만 허구가 길게 남았다.
“60년짜리 신화는 어떻게 천 년의 착각이 되었을까?”
이 질문은, 우리가 다시 쓸 역사와 마주하게 한다.
<
김미선 서북미문인협회 회장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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