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혁·개방 장쩌민 시대에 대한 향수 높아져
▶ 후야오방 사망이 톈안먼 시위로 확산 전례도…반정부 시위 확산 중 장쩌민 사망 영향 ‘촉각’

지난달 30일 상하이에서 주민들의 출입을 통제하려는 방역 요원들과 통제에 항의하는 주민들이 격렬한 몸싸움을 하고 있다. [로이터]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에 직면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사망’(지난달 30일)이라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장 전 주석 사망이 개혁·개방 시기를 향한 중국인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시위를 이어가는 새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정권 정통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장 전 주석 사망을 애도해야 하는 시 주석으로선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장 전 주석에 대한 인민들의 향수가 커질수록, 권위주의로 표현되는 시 주석 리더십은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장 전 주석 사망 다음 날인 1일 중국 주요 매체들은 모두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흑백으로 신문을 발행했다. 주요 관영 매체 홈페이지와 바이두 등 포털사이트 화면도 흑백 처리됐다.
반면 시 주석으로선 이 같은 애도 분위기에 마냥 힘을 실어줄 수 없는 형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시진핑은 장쩌민을 애도해야 하는 동시에 시위대와 씨름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장쩌민의 죽음이 시진핑 체제에 대항하는 세력의 구심점이 될 가능성을 어떻게 차단할지가 그가 마주한 새 도전이 됐다”고 평가했다.
사실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었다고는 하지만, 장 전 주석 역시 다른 중국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권위주의를 기반으로 한 정치인이었다. 1999년 파룬궁 신도들의 시위에 핵심 인사들을 투옥하며 강경 진압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권위적인’ 시진핑의 리더십은 장 전 주석 치세를 ‘그나마 자유로웠던 시기’로 기억하게 한다. 실제 장 전 주석 시절에도 공산당은 정치 생활을 엄격하게 통제했지만, 비정치 영역에선 그나마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했다.
결국 장 전 주석에 대한 인민들의 애도는 시진핑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벌써부터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두꺼비(장 전 주석의 별명)여, 당신에 대한 우리의 비판은 틀린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바닥이 아니라 천장이었습니다” 등 시진핑 체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글들이 게시되고 당국에 의해 삭제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미시간대 중국학센터 매리 갤러거 소장은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그의 사망은 경제 상황과 봉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새 구심점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 지도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민감한 시기, 옛 지도자가 사망한 것은 ‘톈안먼 사태’가 터졌던 1989년의 정치 상황과 묘하게 겹치기도 한다. 그해 4월에도 개혁파 지도자로 대학생들의 지지를 받던 후야오방 전 공산당 총서기가 사망했다. 후야오방의 장례식을 기점으로 대학생들의 민주화 시위가 확산됐고, 이는 결국 6월 톈안먼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