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틸’(Till) ★★★★½ (5개 만점)
▶ 실화인 흑인 소년 납치 린치 사건을 훌륭하고 의미 깊고 감동깊게 그려내
매미가 아들 에멧을 미시시피 시골로 보내려고 시카고역에 함께 나왔다.
1955년 미시시피에서 일어났던 백인들에 의한 흑인 소년 납치 사형(린치) 사건을 다룬 드라마로 여전히 ‘흑인 목숨도 중요하다’라고 외쳐야 하는 미국의 현 시의에 딱 들어맞는 작품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계기가 되는 소년의 처참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어둡고 참담하다기 보다 오히려 용기를 북돋아주고 희망적이다. 이는 여류 감독 치노니에 추쿠의 절제되고 차분하며 품위가 깃든 연출과 함께 죽은 소년의 어머니로 나온 대니엘 데드와일러의 아름다운 심오한 연기 탓이다. 참으로 훌륭하고 의미 깊고 또 감동적인 영화로 꼭 보기를 권한다.
1955년 여름. 시카고에서 2차 대전 미망인인 어머니 매미(데드와일러)와 단 둘이 사는 14세난 소년 에멧 틸(잴린 홀이 생기발랄한 연기를 한다)은 총명하고 밝고 명랑한 아이. 공군부대 타자실에서 일하는 매미는 사무실의 유일한 흑인. 매미에게는 올 곧은 생활인인 이발사 약혼자 진(션 패트릭 토마스)이 있다.
에멧은 여름을 맞아 어머니의 시골 고향인 모니의 삼촌 모지즈(존 더글라스 탐슨)와 가족을 방문할 생각에 들떠 있다. 그러나 매미는 미 남부 백인들의 흑인들에 대한 가혹한 차별에 대해 무지한 도시 소년인 아들의 시골 방문에 걱정이 크다. 그래서 매미는 에멧에게 그 곳에 가면 무조건 백인들 앞에서는 죽은 체 하라고 몇 번씩 이른다. 이에 에멧은 “알았으니 걱정 말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매미는 에멧을 기차에 태워 보낸 뒤에도 아들을 남부로 보낸 것에 대해 크게 걱정하고 자책에 시달린다.
어느 날 에멧은 모지즈의 아들들과 함께 백인 여자 캐롤린(헤일리 베넷)이 돌보는 식품점에 들렸다가 캐롤린을 보고 “당신은 영화배우 같다”고 농하고 이어 캐롤린을 보고 휘파람을 분다. 그로부터 며칠 후 밤에 캐롤린의 남편과 백인 일당이 모지즈의 집을 찾아와 에멧을 납치해간다. 영화는 백인들이 에멧을 구타하고 살해하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에멧의 비명소리만 들려준다.
에멧이 납치됐다는 소식을 전달 받은 매미는 전미흑인 지위향상협회에 도움을 청하는데 이에 협회는 이 문제를 정치화하려고 하자 매미는 처음에는 이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어 매미는 에멧이 미시시피 강 도랑에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처참한 사체로 발견됐다는 통보를 받는다.
매미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에멧의 사체가 시카고로 옮겨진다. 매미가 아들의 사체를 더듬으며 오열하는 장면이 보는 사람의 가슴을 찢어놓는다. 그리고 아들의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 모습이 신문에 대서특필 된다. 또 매미는 아들의 관을 열고 참석자들이 모두 그 처참한 모습을 보도록 한다. 이로 인해 에멧의 죽음은 전국적인 문제로 확대되고 또 정치화 한다. 매미는 체포된 아들의 납치범들에 대한 재판에 참석해 증언하나 모두 백인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은 무죄평결을 내린다. 여기서부터 매미는 서서히 흑백차별에 대항하는 민권운동가로 변신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흑백차별을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살던 한 평범한 여인이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민권운동가로 변신 하는 과정을 매우 객관적이요 냉철하고 또 숙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분노하고 격렬한 감정을 느끼게 할 내용을 결코 흥분하지 않고 담담하게 서술해 감동이 더욱 크다. 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데드와일러의 연기다. 아들의 죽음에 처절한 몸부림을 치던 여인이 강인한 민권운동가로 변신하는 모습을 극도로 감정을 절제하면서 안으로 내연시키는데 상감이다. 그 모습이 꽃봉오리가 서서히 만개하는 모습과도 같다. 우피 골드버그가 매미의 어머니로 나온다. 관람등급 PG-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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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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