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엇이 있는 곳에 노사(老死)가 있을까? 무엇에 의존하여 노사가 있을까? 도대체 무엇이 있는 곳에 태어남이 있을까? 유(有)가 있을까? 취(取)가 있을까? 갈애[愛]가 있을까? 느낌[受]이 있을까? 접촉[觸]이 있을까? 6입처(六入處)가 있을까? 도대체 무엇이 있는 곳에 이름과 형색[名色]이 있을까? 무엇에 의존하여 이름과 형색이 있을까?…
고행을 포기하고 강가에서 몸을 씻다 탈진한 뒤 수자따가 끊여준 우유죽을 먹고 기력을 회복한 싯다르타는 보리수 아래서 반야의 지혜로 사색끝에 정각(正覺)을 이루셨고 7일동안 결가부좌하고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시면서 연기(緣起)를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으로 사유하셨습니다.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무지[無明]에 의지하여 내가 있다는 생각을 만드는 행위[行]들이 나타난다. 내가 있다는 생각을 만드는 행위[行]들에 의지하여 분별하는 마음[識]이 생긴다. 분별하는 마음에 의지하여 이름과 형색[名色]이 나타난다. 이름과 형색에 의지하여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하는 주관들[六入處]이 나타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하는 주관들[六入處]에 의지하여 객관들을 접촉하는 경험[觸]이 있다. 객관들을 접촉하는 경험[觸]에 의지하여 고락(苦樂)의 느낌[受]이 생긴다. 고락의 느낌[受]에 의지하여 갈망[愛]이 생긴다. 갈망에 의지하여 취착[取]이 생긴다. 취착[取]에 의지하여 나라는 존재[有]가 있다. 나라는 존재[有]에 의지하여 내가 태어났다는 생각[生]이 있다. 태어났다는 생각[生]에 의지하여 늙어 죽다는 생각과 근심, 슬픔, 고통, 우울, 고뇌가 생긴다. 이와 같은 과정이 쌓여서 순전한 괴로움 덩어리[苦蘊]가 나타난다[集].’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무지[無明]에서 벗어나면 내가 있다는 생각을 만드는 행위[行]들이 사라진다. 내가 있다는 생각을 만드는 행위[行]들이 사라지면 분별하는 마음[識]이 사라진다. 분별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이름과 형색[名色]이 사라진다. 이름과 형색이 사라지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하는 주관들[六入處]이 사라진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하는 주관들[六入處]이 사라지면 객관들을 접촉하는 경험[觸]이 사라진다. 객관들을 접촉하는 경험[觸]이 사라지면 고락(苦樂)의 느낌[受]이 사라진다. 고락의 느낌[受]이 사라지면 갈망[愛]이 사라진다. 갈망이 사라지면 취착[取]이 사라진다. 취착[取]이 사라지면 나라는 존재[有]가 사라진다. 나라는 존재[有]가 사라지면 내가 태어났다는 생각[生]이 사라진다. 태어났다는 생각[生]이 사라지면 늙어 죽다는 생각과 근심, 슬픔, 고통, 우울, 고뇌가 사라진다. 이와 같이 순전한 괴로움 덩어리[苦蘊]가 사라진다[滅].’
이것이 싯다르타가 깨달은 진리입니다. 깨달은 분, 즉 붓다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죽음이 나타나는 것은 태어나서 죽은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이것을 모르고 ‘태어나서 죽는 내가 있다.’라는 생각에 빠져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죽음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제공 – 붓다나라 미주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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