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잘 싸는 것도 실력이라 할 수 있을까. 회사에 다니던 시기에는 (그리고 전염병이 우리의 두 발을 묶기 전에는) 출장이 너무 잦아 출국 당일 삼십 분이면 거뜬히 일주일치 여행가방이 준비될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속옷, 양말, 잠옷, 세안도구를 가장 먼저 챙기고, 다음으로는 여러 번 색다르게 입을 수 있는 옷들을 나열한다. 무채색의 티와 셔츠는 필수, 겨울이라면 스웨터를 추가하고, 드레스코드가 있는 저녁 약속을 위한 정장 한 벌, 좋아하는 청바지나 면바지 한두 벌 정도면 된다. 이왕이면 구겨져도 괜찮을 만한 바람막이 점퍼도 하나 있다면 구석 어딘가에 잘 숨겨놓는 것도 좋겠다.
신발은 아무래도 목적에 따라 많이 바뀌곤 하는데, 어느 곳으로 가게 되던지 운동화와 저렴한 슬리퍼 한 켤레는 꼭 필요하다. 어느 때나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슬리퍼는 잠깐 호텔 밖을 나갈 때 아주 유용하고, 운동화는 단 몇 시간이라도 새로운 동네를 마음껏 구경할 기회를 준다.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할 것은 역시나 충전기! 나는 그 외에도 여분의 봉투, 물티슈, 손톱깎이, 펜, 비상용 약과 비타민을 챙기는 편이다. 그리고 꼭 떠나기 전, 가방을 다시 한번 열어 불필요한 것은 정말 없는지 훑어보고 몇 개의 아이템을 빼는 시간을 갖는다. 그래야 동행하는 여행 메이트의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줄 수 있고, 돌아올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들을 담을 여분의 공간이 생긴다.
그렇게 몇 번의 짐을 싸고 풀다보면, 반복적으로 나와 동행하는 물건들이 눈에 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현지에서 구매하게 된 낯선 물건들이 새롭게 더해져 오기도 한다. 또 어떤 물건은 잃어버리든지 버리게 되든지 아무튼 그렇게 나를 떠난다.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버려가며, 여행을 거듭할수록 나 또한 변하고 있는 것을 많이 느낀다.
인생을 긴 여행이라고 본다면, 나는 매일 가벼운 여행가방을 만들고 싶다. 등에 멜 수 있는 작은 가방 하나로 내 여정이 적당히 즐겁기를 바란다. 그렇게 가벼워지다보면 내가 매일같이 등에 한가득 안고 있는 삶을 향한 욕심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소유하려는 물건을 들고 가느라 옆에서 나와 동행하고 있는 사람의 손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바다.
<이수진 /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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