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루를 산다는 것은 하루를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작게는 아침에 일어나 무엇을 먹고 몇 시에 어디에 가서 무슨 일로 하루를 보낼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어떤 학교에 진학해서 어떤 직장을 갖고 어떤 종교를 믿으며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우리가 결정하는 하나하나의 선택에 따라 인생의 방향은 결정되곤 하는데 어떤 판단의 기준에 의해 결정된 선택이라야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까?
부처님을 믿는 불자라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두말 할 필요 없이 부처님 말씀을 우리의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하는 말 하나, 생각 하나, 행동 하나하나를 할 때 마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그 순간마다 부처님의 말씀을 떠올려 우리의 선택을 위한 판단의 근거로 활용하는 것이다. 즉 부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실 현실에서 선택의 순간에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종교적 신념과 현실적 이해관계가 대립될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부분일 것이다. 이럴 경우 종교적 신념이 깊은 사람은 별 어려움 없이 종교적 신앙의 가치판단을 기준으로 선택할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현실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불교의 인생관은 크게 인과(因果)와 윤회사상(輪廻思想)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불교적 인생관에 동의하는 사람은 별 어려움 없이 부처님의 말씀을 우리의 가치관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인과와 윤회 같은 불교적 인생관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당연히 현실의 이해관계에 충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불교의 수행론에서 신해행증(信解行證)을 말할 때 믿음을 맨 처음에 두는 이유도 당장 눈에 보이지도 않고 검증할 수도 없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인 인과나 윤회 같은 불교적 인생관을 우리의 가치관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그 가치관에 의해 사유(思惟)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우리는 부처님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구현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어떤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사유를 통해 깨달음을 얻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일상생활 따로 수행 따로가 되기 쉬운데 이럴 경우 일상생활에서는 현실의 이해관계에 충실하게 되고, 별도로 수행을 해 깨달음을 얻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착각을 하기 마련이다.
우리 모두는 행복을 추구한다. 그런데 부처님 말씀을 따르다 보면 현실적 이익을 등지고 종교적 신념을 따라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부처님 말씀이 전적으로 현실적 이익을 멀리하는 것을 최상의 가치로 삼는 것은 아니다,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현실적인 개인의 작은 이익보다는 종교적 가치의 실현을 통한 모든 중생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보다 근본적인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떠나서 수행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 하루도 우리에게 또 다른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다. 우리 인생에 후회 없는 선택이란 있을 수 있을까? 아마도 후회 없는 인생은 없을 것이다. 다만 어떤 후회를 할 것인가 하는 선택만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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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전 스님/SF여래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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