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우리 민족이 반만년 이래로 공통한 말과 글·국토·주권·경제·문화를 가지고 공통한 민족정기를 길러온 우리끼리로서 형성하고 단결한 고정적 집단의 최고조직임.’
1941년 11월 공표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건국강령은 임시정부가 일제 패망을 예견하고 새로운 민주국가 건설을 위해 독립운동의 방향과 건국방침을 제시한 청사진이었다.
건국강령은 총강(總綱)·복국(復國)·건국(建國) 등 3장으로 나뉘어 우리 민족이 나아갈 구체적인 행동방략을 보여주고 있다. 총강에서는 단군 이래 내려온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우리 민족 최고의 공리로 제시한 데 이어 독립과 국토회복의 과정을 자세하게 제시하면서 전시체제에 맞서 독립운동가들의 대동단결을 호소하고 있다. 강령에서 남녀평등권을 선언한 것이나 집회결사의 자유, 참정권 허용, 불합리한 노동 금지 등을 적시한 것은 시대를 앞서 갔다는 평가다.
특히 교육의 내용이 개인천재주의로 흐르거나 국가주의로 내닫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한 점은 오늘날에도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해방 이후 정부가 제헌 헌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건국강령을 토대로 삼은 것은 물론이다.
건국강령은 당시 임시정부 외무부장이었던 조소앙이 정치와 경제·교육의 균등생활을 통해 국가번영을 이루자는 삼균주의에 바탕을 두고 작성했다. 임시정부는 조소앙의 강령 초안을 여러 차례 독회했는데 특정인의 ‘주의’에 빠져 본질을 왜곡하거나 문호가 축소된다는 반대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원고지 10장 분량의 육필원고에서 삼균주의와 관련한 대목에 밑줄이 그어졌거나 첨언 등이 덧붙여진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문화재청이 임시정부의 건국강령 초안을 문화재로 정식 등록한다는 소식이다. 선조들의 독립운동에 대한 염원이 오롯이 담겨 있다는 게 선정이유다. 임시정부는 일제 패망을 예견하고 강령까지 만들어 신국가 건설을 주창했지만 불행히도 강령에서 선언한 ‘우리 민족의 힘으로 이족전제(異族專制)를 전복’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오늘날까지 건국강령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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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범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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