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4월24일.
중국 간쑤성 주취안 위성센터에서 발사된 173㎏의 인공위성이 지구 궤도에 진입한 후 중국 혁명가요인 ‘둥팡훙(東方紅)’ 멜로디를 송신해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중국 최초의 인공위성 ‘둥팡훙 1호’는 본격적인 우주시대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중국은 국가 주도로 1957년부터 우주개발 계획에 착수한 후 1960년 최초의 로켓을 발사한 데 이어 2003년에는 유인우주선 개발에도 성공했다. ‘선저우 5호’는 우주인 양리웨이를 태우고 21시간의 비행 끝에 네이멍구 초원에 귀환함으로써 세계 세 번째 유인우주선에 이름을 올렸다.
11세기께 오늘날의 로켓인 화전(火箭)을 개발한 중국인들은 일찍이 인간을 우주에 보내는 세상을 꿈꿔왔다. 서왕모의 불사약을 훔쳐 먹고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됐다는 달의 여신 창어(嫦娥) 신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 중추절의 민간풍속도 창어 설화에서 유래된 것으로 예로부터 달에 가보는 것을 ‘천년의 꿈’으로 간직해왔다고 한다.
중국이 사상 최초로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달 뒷면에 착륙할 무인탐사선 이름을 ‘창어 4호’로 명명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창어 4호는 내년 1월 초 인류 최초로 달 뒷면 착륙을 시도할 예정이다.
중국의 우주개발 과정에는 시련도 많았다. 1990년대 초반 네 차례에 걸쳐 위성 발사에 실패하며 큰 위기를 맞기도 했다. 1996년 2월에는 위성이 발사 후 22초 만에 폭발해 타고 있던 우주인이 사망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정부 지원이 끊기면서 당 지도부에서 “지구상의 일을 먼저 처리하고 지구 밖의 일은 나중에 처리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하지만 지도부의 우주개발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식지 않았다.
‘우주과학의 아버지’ 첸쉐썬이 입원하자 장쩌민 전 주석이 세 차례나 문병을 다녀왔고 그의 장례식에는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이 참석해 애도를 표했다고 한다.
중국이 올해 모두 38대의 로켓을 발사해 미국의 35대를 제치고 처음으로 세계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이다. 지난해보다 로켓 발사 횟수를 두 배 이상 늘리면서 우주굴기를 과시해 미국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은 최근 달 탐사에서 중국을 제외하고 다른 나라들과 우주개발 협력을 강화하는 등 본격적인 견제에 나서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이 급기야 우주공간에서도 펼쳐질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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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범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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