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3월21일 홍진기 당시 법무부 장관과 전국 형무소장들이 서울 형무관학교에 모였다. 홍 장관이 수감자에 대한 교화와 계도 강화에 대한 엄중한 지시를 하고 형무소장들의 의견과 고충을 듣기 위해 소집한 모임이었다.
상당수의 형무소장들이 홍 장관에게 수감자의 가석방 범위 확대, 교육제도 개편 등을 요청했을 때 서울형무소장은 뜻밖의 제안을 들고 나왔다. 일부 수감자의 철저한 교화를 위해 무인도나 특정한 장소에 형무소를 만들고 격리 수용할 것을 건의한 것이다.
물론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무인도가 당시까지만 해도 사회 부적응자들의 유배지로 사용될 수 있었음이다.
무인도는 세상과 단절된 장소다. 조선 시대 ‘절도안치(絶島安置)’로 불린 무인도 유배는 그래서 죄인과 정쟁의 패배자에게 내리는 높은 형벌 중 하나로 취급됐다. 고전소설 ‘구운몽’의 저자인 김만중이 유배를 떠난 남해의 ‘노도’라는 섬도 인간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사람만 보내진 것은 아니다. 세종 때 궁중에서 키우던 애완용 코끼리가 공조 전서를 밟아 죽이자 전라도 여천 앞바다의 무인도 ‘장도’로 보냈고 태국도 원숭이로 인한 피해가 커지자 지난해 푸껫 인근의 무인도에 격리하는 조치를 취했다.
꼭 죄가 있어 무인도로 보내려 했던 것은 아니다. 한일협정 반대시위로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1964년 6·3사태 때 김형욱 당시 정보부장은 트럭 1,000대를 동원해 시위 주동자를 서해의 외딴섬으로 보내자고 제안했다.
민복기 법무부 장관의 반대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외면으로 실행에 옮겨지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시도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최근 공개된 국가기록원 자료에 따르면 1980년 9월9일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삼청교육대 교육생 중 순화 불가능자에 대한 조치로 무인도에 수용하는 것을 포함해 네 가지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인도는 정권 유지를 위해 언제든 사용될 수 있는 카드였다.
덴마크 정부가 범죄자나 망명 신청이 거절됐는데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난민 등을 린홀름섬이라는 무인도에 격리하기로 했다. 동물 전염병 연구센터 실험실과 동물 사체 소각시설이 존재하는 이 섬에 오는 2021년까지 약 1억1,500만달러를 들여 수용시설을 만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인권침해 논란도 난민 유입 방지라는 명분에 묻혔다. 권력은 예나 지금이나 무인도를 내버려두지 않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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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규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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