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의 황제’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87)의 이미지는 외환위기를 경험한 한국인들에게는 부정적이다.
같은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을 ‘오마하의 현자’로 칭송하지만 소로스는 어쩐지 외환 투기꾼이라는 꼬리표를 먼저 떠올린다.
저 유명한 1992년 영국 파운드화 공격은 돈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탐욕의 이미지를 덧칠했다. 당시 영국 중앙은행이 소로스의 파운드 공매도 공세에 백기 투항하자 영국인들은 치를 떨며 그를 악마라고 불렀다.
다른 모습도 있다. 소로스는 인권 신장과 민주주의 확산에 공헌한 사회활동가이자 기부왕이기도 하다.
그가 1979년 설립한 ‘열린사회재단’은 공산 치하의 동유럽에 민주주의 가치 전파를 위해 만든 비영리단체로 지금까지 34조원에 이르는 거액을 기부했다.
재단 명칭은 소로스가 런던정경대를 다닐 때 은사였던 칼 포퍼 교수의 명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따왔다.
소로스는 헝가리 출신 유대인으로 독일 나치의 반유대주의와 동구의 공산화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월가에 정착했는데 이런 경험이 왕성한 사회활동의 밑거름이 됐다고 한다.
소로스는 고국에 엄청난 액수의 기부를 하고 민주화 진전에 헌신했지만 정작 헝가리 정부에서는 반체제 인물로 취급받는다.
올봄 총선에서 세 번째 연임에 성공한 빅토르 오르반(53) 총리는 극우 민족주의자로 소로스와는 물과 기름처럼 한데 섞일 수 없는 사이다.
반이민 포퓰리즘 정책은 두 사람을 완전히 갈라놓았다. 오르반 정부는 국경마다 전기 철책을 설치하고 반이민을 부추기는 정부 광고를 쏟아냈다. ‘열린 사회’를 지향하며 난민단체를 지원해온 소로스는 오르반 정부로서는 눈엣가시인 것이다.
소로스가 부다페스트에 설립한 중앙유럽대(CEU)가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전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소로스 탄압법으로 불리는 ‘스톱 소로스(Stop Soros)법’이 통과되면서 하루아침에 대학에 불법 딱지가 붙었기 때문이다.
이 법은 난민을 지원한 개인·단체에 대한 처벌과 외국인 기부금에 대한 과세도 담고 있다.
오르반 총리가 청년 시절 ‘소로스 장학생’이라는 점은 아이러니다. 그는 소로스의 뒷받침 덕에 영국 옥스포드 대학 유학길에 올랐다. 학생 시절 민주화운동 때도 측면 지원했다고 한다. 그 단체가 지금의 집권당의 전신이다. 두 사람의 기구한 운명이 얄궂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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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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