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5월. 독일 기갑부대가 프랑스로 진격하자 36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파리의 고급 레스토랑 ‘라 투르 다르장’에 비상이 걸렸다.
레스토랑 측은 지하에 보관돼 있던 명품 와인을 지키기 위해 저장고 한편에 몰래 벽을 쌓아 밀봉한 뒤 2만병의 특급 와인을 숨겼다. 독일군은 지하 저장고를 뒤져 8만병의 와인을 쓸어갔지만 희귀한 와인은 한 병도 찾아내지 못했다.
독일군은 프랑스 점령기간 내내 숨겨진 와인을 찾기 위해 프랑스인들과 치열한 숨바꼭질을 벌여야 했다. 프랑스 농부들은 호수 밑바닥이나 들판, 벽장 속에 와인을 숨겼고 아이들은 저장고 근처에 일부러 거미줄을 치면서 와인 사수작전을 도왔다고 한다.
유럽인들의 각별한 와인 사랑은 결국 전쟁으로 번지기도 했다. 1152년 프랑스 아키텐의 공주 알리에노르는 영국의 헨리 2세와 결혼하면서 최고의 와인 생산지인 보르도를 지참금으로 가져가 영국에 넘겼다. 덕분에 영국에서는 한해 소비되는 와인의 75%가 보르도산으로 채워질 정도로 와인 종주국으로 자리 잡게 됐다.
결국 프랑스는 보르도 지역을 되찾기 위해 백년전쟁을 벌였고 전쟁 말기에 영국의 존 탤벗 장군이 잔 다르크에게 처참히 패배하면서 프랑스령으로 굳어지게 됐다. 보르도 사람들이 적장인 탤벗 장군을 기리기 위해 만든 와인이 바로 유명한 ‘샤토 탈보’다.
하지만 와인은 때로 평화의 상징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스라엘은 1967년 아랍과의 ‘6일 전쟁’에서 승리하자 골란고원에 포도밭부터 일궜다. 갈릴리호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고도와 화산토, 선선한 기후는 와인을 만드는 데 최적이었고 전쟁의 포화로부터 일단 벗어나는 호기로 작용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2008년 골란고원에서 만들어진 야르덴 와인을 유엔 수뇌부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낸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프랑스 정부에서 미국산 와인에 지나치게 높은 관세를 매긴다며 불만을 표시했다는 소식이다. 프랑스의 무역관행이 ‘불공평하다’며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이는 파리에서 열린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굴욕을 당한 데 따른 것이겠지만 트럼프 가문이 캘리포니아 와인 농장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해 구설에 오르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의 21세기 와인전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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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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