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하는 시간 속으로 드문드문 날리던 흰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달리는 버스, 차창을 붙잡는 산자락들을 뿌리치며 우리들의 기억 안으로 질주해 들어왔다.
삶의 이정표와 표시판이 요동치다가 마침내 기억이 끝나는 곳, 우우雨雨거리는 가슴 너머 보이는 시골 옛집 후락한 처마가 그늘진 마당, 이월의 잔디가 누렇게 스러져 있었다.
집 앞으로 난 좁은 길, 아래로 벼밑둥이 어지러운 논과 논 사이 부석하게 언 구불텅한 논둑길, 조심스레 산기슭에 닿아 있었다.
낯설지 않은 산등성이 해가 드는 반듯한 곳, 흙에서 일어난 구름 불꽃으로 타올라 이슬같이 재로 내리고 땅은 재 한줌을 흙으로 받아들였다.
산을 내려오는 길 우리는 소매를 잡고 따라오는 바람, 겨울잠을 자는 나무 곁을 지나며 이렇게 속삭이는 말을 들었다.
“이제 곧 일어나야 할 시간이야, 준비해야 돼”
당선소감 l 이용언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는데 아무리 풍자, 과장 내지는 왜곡의 표현이라 해도 아니 개가 어떻게 풍월을 읊을 수 있다니!
처음에 이 말을 지어낸 이가 기르던 아니면 보았던 서당개는 특별했던 게 분명하다. 그 개는 아마도 시선(詩仙) 이태백이나 시성(詩聖) 두보가 환생이라도 했던 개였을 지도 모르겠다 (시선과 시성 모독(冒瀆)의 의도는 없음). 한편 내가 시에 입문한지 삼 년이 꽉 채워졌음에도 풍월은커녕 제대로 된 ‘개’소리 조차 잘 내지를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 옛말도 내게는 적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정말 전생이란 게 존재한다면 추측컨대 나는 이생에 사람으로 태어나 늦은 나이에 시문에 입문한 전생의 무식한 개였을 확률이 크다. 그럼에도 이번 나의 졸시를 가작으로 뽑아주신 두 분 심사위원 시인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거리를 숨어 다니며 냄새 나는 쓰레기통을 뒤지는 유기견을 포함한 모든 사물이 내는 소리를 사물의 귀로 듣고 이들의 주인인 신의 언어로 옮기는 일을 했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램이다. 늘 나의 울퉁불퉁한 언어를 망치로 사정없이 내려치는 사랑스런 아내가 요즘은 덜 무서워지는 게 벌써부터 교만이 든 건 아닌지 스스로 묻고 있다. 모든 게 감사하다. 너무 많이 감사를 하다 보니 내 안이 텅 비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행복한 것은 텅 비어 있는 내 안에 더 많은 감사가 금방 채워질 것 또한 굳게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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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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