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사회가 폭군을 없애는 데는 자주 실패하지만, 폭군의 출현을 줄이기 위한 제도 고안은 늘 해왔다. 아테네의 ‘도편추방제’가 그런 시도였다. 공동체가 폭군이 될 가능성을 가진 정치인을 미리 발견해 일정 기간 추방하는 제도였다. 물론 이 장치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야합과 선동이 끼어들면 예방 장치는 정적 제거의 서커스로 변했다.
중동에 전쟁이 일어났다. 우리는 영상으로 그 장면을 본다. 스튜디오에서는 전문가들이 전쟁을 분석한다. 화면이 바뀌면 미사일이 건물을 무너뜨린다. 다시 화면이 바뀌면 미국 관료들의 브리핑이 이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환영이다. 실제 전쟁은 가족의 몸이 눈앞에서 찢어지고 귀는 굉음 속에서 하얗게 마비되는 공포다.
문제의 뿌리는 권력의 성격에도 있다. 체제와 시대를 가리지 않고, 권력의 꼭대기에 서면 자신이 국가고 정의다. 그 순간부터 정책은 토론이 아니라 충성 경쟁이 되고, 반대는 의견이 아니라 배신이다. 독단은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권력이 만들어내는 습관이다. 제도적 견제가 느슨해지는 순간 폭군은 어김없이 배양된다.
성경이 민주주의 교과서는 아니다. 그러나 권력을 길들이는 장치를 집요하게 남겨두었다. 신명기는 왕이 군마를 늘리고 아내를 늘리고 은금을 쌓지 못하게 묶는다. 더 중요한 명령은 이것이다. 왕이 율법책을 곁에 두고 평생 읽어 “마음이 형제들 위에 교만해지지 않게 하라”.성경이 요구하는 것은 영웅적인 왕이 아니라 절제하는 왕이었다.
또 하나의 장치는 판결의 장소였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많은 분쟁 해결과 의결은 왕궁이 아니라 성문에서 다루어졌다. 성문은 단순한 도시 출입구가 아니라 공동체의 광장이었다. 신명기의 재판도, 룻기의 재산 문제도 장로들과 마을 사람들 앞에서 결정된다. 사람들은 누가 무엇을 주장했고 누가 무엇을 거절했는지 직접 보고 들었다. 권력을 제한하는 첫 번째 장치는 투명한 가시성이었다.
결국 문제는 제도다. 왕의 도덕성에 기대는 사회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편을 만들고 성문을 만들고 헌법을 만들었다. 만든 걸 수정 보완하고 또 개정한다. 그러나 제도 역시 인간이 만든 것. 인간이 탐욕을 버리지 않으면, 오히려 제도가 우리를 배신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제도를 포기할 수 없다. 권력을 길들이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성문이든, 아테네의 도편이든, 현대의 헌법이든 목적은 하나다. 권력이 혼자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폭력은 은밀할수록 커지고 권력은 공개될수록 작아진다. 그래서 사회는 늘 시끄러워야 한다. 성문이 조용해지는 순간, 왕의 목소리는 커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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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석 목사·한국침례신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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