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회사 인텔은 1990년대 중후반 전 세계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인텔이 재채기를 하면 전 세계 PC 산업이 독감에 걸린다”는 말이 회자됐다. 이런 인텔도 특허관리전문회사(NPE·Non Practicing Entity)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1998년 인텔은 테크서치라는 회사의 특허 소송에 휘말렸다. 테크서치는 파산한 회사들의 특허를 사들여 인텔 같은 거대 IT 기업에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했다. 인텔의 사내 변호사인 피터 뎃킨은 테크서치를 ‘특허괴물(patent troll)’이라고 불렀다. 다리 밑에 숨어 지나가는 염소를 협박해 통행료를 갈취한 북유럽 전래 동화 속 괴물 ‘트롤’에 빗댄 비판이다. 뎃킨이 2000년 세계 최대 규모 NPE인 인텔렉추얼벤처스(IV)를 공동 설립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NPE에 특허 기밀을 넘긴 전 삼성전자 지식재산권(IP)센터 직원과 공모한 혐의를 받는 NPE 대표를 구속 기소했다. 이 직원은 심지어 재직 중 몰래 자신의 NPE까지 설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삼성전자 IP센터장은 퇴사 이후 또 다른 NPE를 설립해 삼성전자를 공격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기업의 기술을 보호해야 할 특허라는 방패가 내부자의 모럴해저드로 하루아침에 기업의 심장부를 겨누는 칼로 돌변한 것이다.
■NPE는 최근 미국 정부의 특허권 보호 강화 기조를 적극 활용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K반도체를 집중 타깃으로 삼고 있다. NPE의 무차별적인 공격은 단순히 개별 기업의 소송 비용과 합의금 등 재무적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혁신 기술 연구개발(R&D)에 사용될 자금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에는 국가 첨단산업의 성장 동력과 경제 전반에 치명적인 손실을 초래한다. 기업과 국가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특허 탈취 및 불법행위는 일벌백계로 엄정하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김정곤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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