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1
내가 재학중인 고등학교는 학생을 위한 학교가 아니다. 명문대학에 많이 합격시켜 위상을 높이는 것이 학교의 목적이지, 학생 개개인의 성향이나 취향에는 관심 없다. 우리 학교에 끼 많은 학생들이 모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에게 알맹이를 갖추게 하기 보다 껍데기 포장하는 방법만 알려준다.
명문고에 다닌다는 이유로 소속감과 안정감은 있지만, 껍데기 포장법만 알려주는 학교를 왜 계속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유로 중퇴한 학생도 있고, 그냥 현모양처로 사는 게 속 편하겠다라며 공부도 대학도 접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잘 나가는 남 친구하기에 몰두하는 학생도 있다.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드론(drone)에 관심을 지닌 학생, 다큐멘터리 제작에 활발한 학생, 내츄럴 화장품을 사용한 청소년 피부관리에 심취한 학생 등등 이런 저런 끼를 보이는 여럿을 만났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 학생들이 욕구를 잃어 버리고 무기력해지는 것을 보았다. 관심사, 호기심, 질문은 그들의 삶에서 사라졌다. 학교에서 끝까지 버티는 학생은 시험준비(암기)를 잘하고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학생이다. 그러나 나는 왜 학교와 선생님 말씀만 따라가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는지 모른다.
나는 판타지소설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장래의 꿈은 작은 책 카페를 열어 사람들과 함께 사회와 삶의 문제에 관해 토론하며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학교 선생님과 부모님은 프로페셔널 잡을 가져야 한다 라며, 약사가 최고다, 법 공부해라, 헬스케어 쪽으로 눈을 돌려라,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컴퓨터 분야가 최고다 등등 일방적인 주문을 하고 있다.
마치 커피숍에서 각자의 입맛에 맞는 카페라떼, 카푸치노, 마끼아또를 주문하는 것처럼. 그런데 나는 그분들이 제시하는 분야에는 전혀 관심도 흥미도 없다. 지금까지의 나의 관심과 흥미는 그림에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내가 그린 그림을 모아 두었다. 그것도 부모님 몰래. 그림의 아이디어는 수시로 나온다.
수업시간, 쉬는 시간, 자유시간, 집에서, 밖에서, 시간과 때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그림 아이디어가 나온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의 그림을 본 학교 미술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의 그림은 상업용으로 적당하지 순수미술은 아니다. 네가 미술을 전공할 수 있는 소질은 없다.” 그리고 “학교는 공부와 성적에 집중하는 곳이지 너의 소질을 개발시켜주는 곳이 아니다. 네가 원하는 끼 개발은 다른데 가서 하는 게 좋겠다”라고 조언하셨다.
나의 부모님도 미술을 향해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친구 자녀들 가운데 대학에서 미술 전공한 사람이 꽤 있는데 지금 모두 고급 백수다. 미술공부 해봐야 취직 안 된다. 무엇을 하든 취업할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해라. 미술전공을 해야 하는 학생은 세가지 부류뿐이다. 미술에 끼가 넘쳐서 중고등학교시절 때 이미 모든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은 학생, 점수와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하기 어려운 학생, 아니면 부유한 부모 덕분에 취업 걱정이 필요 없는 학생이다. 너는 세가지 가운데 어느 쪽도 아니다.”
학생#2
나는 동부의 명문대학에서 컴퓨터 사이언스 전공을 하고 지난해 졸업했지만 아직까지 직장을 얻지 못했다. 이유는 나의 컴퓨터 기술부족이 아니라 나의 소통능력에 있다. 인터뷰에서 번번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고백한 학생#1과 #2는 같은 학생이다.
<
대니얼 홍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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