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TV에서 안쓰러운 장면을 봤다. 태풍 ‘하비’가 덮친 텍사스주의 한 양로병원(너싱홈) 거실에 대여섯 노인이 허리까지 잠긴 흙탕물 속에 얼빠진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도 있었다. 이들은 밤중까지 그렇게 방치돼 있다가 방위군에 의해 구조됐다. 양로병원 업주는 노인들을 그대로 두도록 당국으로부터 지시 받았다고 말했다.
너싱홈 노인들이 겪는 육신적, 정신적 학대가 유야무야 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바로 닷새 전 연방 보건사회부도 너싱홈 노인들이 학대당해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로 중상을 입기 일쑤지만 피해자 4명중 1명은 경찰에 신고조차 안 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신고 안 된 학대사건 피해자 5명 중 4명은 강간 등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보사부 감사국은 지난 2년간 전국 33개주 너싱홈에서 134명이 응급실 치료를 받을 만큼 학대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들 중 28%는 경찰에 신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 노인여성은 자기 방에서 강간당해 심한 타박상을 입은 채 방치돼 있었다고 했다. 관련 연방법은 이런 사건이 발생할 경우 업주가 2시간 내에 경찰에 신고토록 의무화 하고 있다.
감사국은 전국 너싱홈에 만연하는 노인학대를 감안하면 이번에 밝혀진 134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이들 피해자는 ‘최악 중의 최악’ 케이스”라고 지적했다. 감사국의 한 관계자는 이번 조사가 응급실에 실려와 신원이 확인된 학대 피해자들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수치가 제한적이라며 밖에 알려지지 않고 유야무야되는 케이스는 부지기수라고 설명했다.
보건사회부 보고서가 발표된 무렵 또 다른 충격적인 조사논문이 나왔다. 현재 57세부터 61세 사이의 미국인들 가운데 과반인 56%는 죽기 전에 너싱홈에 들어가 최소한 하룻밤이라도 지내게 될 것이라고 권위 있는 싱크탱크인 랜드(Rand) 연구소가 밝혔다. 지금까지 연방 보사부는 그보다 훨씬 적은 35%가 말년에 너싱홈 신세를 질 것으로 추정해왔다.
랜드 조사팀은 국립 노령연구원(NIA)과 사회보장국(SSA)의 합동 장기 연속사업인 ‘건강 및 은퇴 조사’에 축적된 지난 18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해 이처럼 깜짝 놀랄 전망치를 산출했다며 “앞으로 중장년층 두명 중 한명 꼴로 너싱홈 신세를 지게 될 상황을 감안해 본인이나 배우자의 너싱홈 비용을 지금부터 마련하도록 결심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학술원 저널에 게재된 랜드 보고서는 현재 57~61세 미국인들이 너싱홈에 들어가 죽을 때까지 부담할 비용을 비교적 저렴한 1인당 7,300달러로 잡았다. 이들 중 3분의1은 자비로 부담하지만 43%는 개인보험이나 국영 노인보험인 메디케어에 의존하게 된다. 너싱홈 거주기간은 평균 272 밤이지만 1,000 밤 이상을 살다가 사망한 사람도 10%나 된다.
자녀를 둔 노인들이 너싱홈 신세를 덜 지는 건 아니다. 그래도 자녀가 있는 노인들은 너싱홈 거주기간을 단축하거나 관련비용을 최고 38%까지 줄일 수 있다. 특히 딸을 둔 노인들은 자기 집에서 딸의 간병을 받을 기대치가 높고, 그에 따라 비용도 더 많이 줄일 수 있다고 랜드 보고서는 귀띔했다. 딸이 아들보다 좋은 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매 한가지다.
너싱홈은 17세기 때 고아, 정신질환자, 무의탁노인 등을 수용했던 ‘암즈하우스(almshouse, 구빈원)’가 효시다. 대공황 후 노인들만을 위한 ‘요양 가정(convalescent home)’이 됐다가 2차 대전 후 노인과 장애자를 함께 아우르는 너싱홈 체제로 바뀌었다.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가 돈 줄이 됐고, 1965년 개정법에 따라 너싱홈마다 정규간호사를 두게 됐다.
현재 미국 전역의 너싱홈에 수용된 노인은 대략 140만명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알게 모르게 학대당한다는 얘기다. 앞으로 57~61세 그룹은 물론 그 후세들 가운데 너싱홈 입주자가 크게 늘어날 터이다. 나는 이미 70대 중반이지만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너싱홈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아니면 그곳 체류기간을 줄이기 위해, 오늘도 배낭을 메고 산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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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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