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해 말해볼까” 라고 물어보자S 학생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고 옆에 계시는 부모님만 쳐다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침묵이 길어지자 부모님께서“우리 아이는 지금 11학년인데…”라며 대신 소개를 시작했다. “제 질문은 학생을 향한 것이기 때문에 학생 스스로 대답할 수 있도록 부모님께서는 기다려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 드리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방법 몇가지 예를 들어 자세히 설명해주고 나서, “방법을 알았으니 이제 말해볼까”라고 물었다. 그렇지만 처음보다 더 긴 침묵이 돌아왔다.
W: 초등학교4학년 때 로봇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D: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예를 들면, 로봇에 관한TV를 보았거나, 책을 읽었거나, 주변 사람이 권유했거나 등등, 어떤 동기가 있었을 텐데 그것을 말해볼까?
W: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D: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는데 아무런 계기없이 로봇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대학입시 인터뷰에서 말하면 설득력이 있을까.
W: 그냥 시작했다.
J: 공대에 진학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
D: 그 방법을 알아내는 비밀은 엔지니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있다. 엔지니어가 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J: 무엇인가 만드는 사람이다
D: 제과점에서 빵을 만드는 사람도 무엇인가 만드는 사람인데 그 분을 우리는 엔지니어라고 부르나?
J: 잘 모르겠다
D: 그렇다면, 혹시 엔지니어들 가운데 “이런 사람처럼 되고 싶다”라는 인물이 있으면 말해볼까?
J: 그런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일부 입학사정관들은 한인지원자들을 가르켜“무뚝뚝한 일차원적인 학생”이라고 표현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나타내지 못하고 서로 비슷하고 밋밋하다는 것이다. 특히 인터뷰에서 말을 아끼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한국적 사고방식으로는 과묵하다라는 칭찬을 듣겠지만, 인터뷰에서는 무례하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심지어“이 학생이 나에게 화가 났나?”라고 의아해하는 면접관도 있다. “말이 씨가 된다”라며 늘 말조심을 강조하는 가정과 문화에 젖어 무의식적으로 무거운 입을 중요시하느라 자신을 표현하는 훈련에 소홀히 한 결과다.
최근 노스웨스턴 메디칼스쿨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의료사고로 일년에 44만명의 환자가 사망한다. 의료사고에는 오진, 수술 실수, 마취관리 미숙 등등으로 기술적인 이유가 주를 이루지만 사고의30%는 의사와 환자 그리고 의료진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부족 혹은 소홀에서 왔다.
이렇듯, 소통부족이 불합격이나 죽음까지 불러 올 수 있지만 학생과 부모는 말빨훈련을 외면하고 있다. 일단, 학교성적과 등수가 좋으면 모든 것이 용서되기 때문이다. 설사, 자녀가 자신을 표현한다고 해도, “쓸데없는 말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로 귀결되고, 무엇에든 자녀대신 나서서 대답해주는 바람에 자녀의 표현기회마저 가로챈다.
사실, 아무리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학생이라도 자신이 아는 사람과는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다만 “집 밖은 위험한 곳, 낯선 사람은 경계의 대상” 이라는 문화코드에 길들어져 낯선 사람을 만나면 머뭇거리게 된다.
머뭇거림을 치료할 기회가 바로 여름방학이다. 여행이나 방학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널려 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불필요한 걱정과 눈치를 접고, 일단 상대방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이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 그것도 낯선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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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엘 홍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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