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장래에 하고 싶은 일은?
K: 정치외교에 관심이 있어서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
D: 국제기구 가운데 일하고 싶은 기관 몇 군데를 말해 볼까?
K: 딱히 없지만 어떤 국제기관이라도 상관 없다
D: 식당에서 주문할 때 “딱히 먹고 싶은 것이 없으니까, 아무거나 주세요”라고 하면 무슨 반응이 돌아올까?
K: 솔직히 말해서 장래에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른다. 정치/외교에 관심이 있다고 말한 것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 아빠가 그쪽 분야가 괜찮다라고 말씀해주셔서 그렇다. 그러나, 그 분야가 내 취향에 맞는지, 내가 진정으로 관심이 있는 지는 모른다.
D: 대학에서 전공하고 싶은 분야는?
S: “앞으로 전기자동차, 무인자동차 분야의 전망이 밝으니 그 분야 전공을 해보라”는 매형의 말을 듣고 자동차공학으로 결정했다.
D: 만일 다른 사람이 “자동차보다 의료분야가 훨씬 더 전망이 좋으니 그쪽으로 가라”고 권유한다면 생각을 바꾸겠나?
S: 잘 모르겠다.
커리어와 전공에 관해 필자(D)와 이야기를 나눈 K와 S는 자신의 아버지와 매형의 말을 무작정 따랐다. 아무런 생각이나 검토없이.
체호프의 단편 소설 <귀여운 여인>의 주인공 올렌카는 남편을 세번 바꾸었다. 연극연출가인 첫번째 남편과 살면서 올렌카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 연극이요, 연극을 모르는 사람은 삶의 의미를 모른다 라고 할 정도로 남편의 생각을 따랐다. 그러나, 연극단원을 모집하러 모스크바에 출장 갔던 남편은 사망했다. 두 번째 맞은 올렌카의 남편은 원목사업가였다. 이제 올렌카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필요한 것은 나무라고 여겼고, 심지어 남편이 방이 너무 덥다라고 하거나, 불경기로 나무가 팔리지 않는다 라고 말하면 그녀도 역시 그렇게 느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날 목재를 내주려고 남편은 밖에 나갔다가 감기가 들어 투병하다 사망했다. 또다시 과부가 된 올렌카는 수의사를 세번째 남편으로 맞아 살기 시작했다. 잠시 행복을 누리는 듯 했지만 남편은 갑자기 시베리아로 떠났다.
올렌카는 의존성 성격장애, 즉 무슨 일에든 자기의견이나 소신이 없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내세울 수 없는 증세를 보였다. 남의 말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올렌카의 삶은 터널속 삶이었다. 외부의 모든 것이 차단되고, 입구와 출구만 바라보아야 하는 컴컴한 터널에서는 다양한 시각을 지닐 수 없다. 다양한 시각의 부재는 판단력 상실을 낳고 판단력 상실은 남을 향한 의존을 낳는다.
학생들도 터널 같은 환경에서 오래 지내면 지낼수록 자신도 모르게 남의 가치관에 종속 당한다. 남편의 생각과 느낌이 곧 자신의 생각과 느낌이라고 여긴 올렌카처럼, 남이 정해준 꿈과 진로가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터널 속의 삶이다.
물론, 어떤 사람도 주변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 가정과 학교에서 학생들은 간접, 직접적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때때로 자신의 방향타를 정한다. 그러나, 그런 영향을 아무런 판단과 여과없이 받아 들이는 것은 자신을 포기하는 일이다. 남이 정해준 빨강 신호등에서 멈추고 파랑 신호등에서 전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신호등 불빛이 빨강인지 파랑인지 분별을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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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홍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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