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취업하기 위해 외국인 몇 명이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들 이력서의 하이라이트를 살펴보자.
첫 번째 지원자는 가족관계와 학력에 관해 이렇게 서술했다. 나의 친부모는 나를 키울 능력이 없어 다른 사람에게 입양시켰다. 그리고, 마리화나를 피우는 히피 학생들이 주로 재학하는 리드대학에 진학했지만 양부모의 재정상태 악화로 더 이상 등록금을 댈 수 없어 중퇴했다.
두 번째 지원자는 첨부한 사진아래에 이런 설명을 했다. 나는 루게릭병으로 인해 반신 마비가 되었고 휠체어 없이는 생활할 수 없다. 그리고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나의 얼굴은 구겨진 휴지처럼 일그러져있다.
세 번째 지원자는 자신의 출신 성분에 관해 진솔하게 말했다. 나는 대학시절 청년 헤겔주의자 사건에 연루되었고 운동권 학생으로서 데모, 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리고,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창시자라는 이유로 “빨갱이원조”라는 별명을 얻었다.
네 번째 지원자는 자신의 생긴 모습, 가족관계, 범죄사실을 나열했다. 나는 대머리에 억울하게 생겨서 외모지상주의가 주도하는 아테네에서 왕따를 당했다. 집사람 크산티페는 잔소리, 구박, 바가지 삼중주 지휘자다. 아테네 전통을 해치고 청년들을 미혹한다는 중범죄로 여러 번 옥살이를 했다.
이력서에 밝힌 이들의 이름은 이렇다. 스티브 잡스, 스티븐 호킹, 마르크스, 소크라테스. 제출된 이력서를 검토하는 과정은 편견과 선입견을 바탕으로 지원자를 차별하는 과정이다. 차별 없이는 회사나 조직에서 수많은 지원자 가운데 필요한 인재를 가려낼 수 없다. 그런데, 그 차별이 가족관계, 학력, 생긴 모습, 출신배경 등 업무수행능력과 관련이 없는 것을 근거로 하는 차별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잡스는 용산전자상가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거나, 호킹스는 성형수술부터 받을 것을 종용 당하거나, 마르크스는 국가의 주적으로 찍히고, 소크라테스는 남의 나라에 와서 헛소리만하고 다닌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감금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랄프 엘리슨의 소설 <보이지않는 인간> 첫머리에서 주인공이 토로한 것과 비슷하게“한국 기업들이 나보기를 역겨워한다”라며 한탄할 것이다.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그것은 에드거 앨런포를 사로잡은 유령이나 헐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심령체 같은 존재라는 말은 아니다. 나는 살과 뼈가 있고, 섬유질과 체액으로 이루어진, 육신을 지닌 인간이다. 어쩌면 정신까지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 주변의 것이나 혹은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 꾸며진 것만을 본다. 그들은 모든 것을 빠짐없이 다 보면서도 정작 나의 진정한 모습은 보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공무원과 공공부문 이력서에서 사진, 학력, 출신지, 가족관계 등을 삭제하는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실력, 능력, 기술로 지원자를 판정하겠다는 의도다. 사실, 이력서는 구시대의 유물이다.
TGIF(Twitter, Google, Instagram, Facebook)등 소셜미디어를 뒤져보면 지원자의 라이프스타일, 관심사, 친구관계 등등을 알아낼 수 있고, 조금만 더 깊이 파면 신용등급, 범죄사실, 재산 등 개인의 모든 신상을 털 수 있다. 이렇듯, 제출된 이력서보다 온라인에 남겨진 개인의 흔적(digital trace)을 근거로 훨씬 더 무서운 차별을 하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편견과 선입견을 없애 보겠다는 정부의 정책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왠지 시대에 뒤떨어지는 뒷북치는 모습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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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홍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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