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처형을 앞둔 예수가 열두 제자와 함께 나눈 최후의 만찬은 산해진미가 아니었다. 빵과 포도주뿐이었다. 예수는 빵을 자신의 몸에, 포도주를 자신의 피에 비유하면서 “앞으로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분부했다. 그에 따라 오늘날 전 세계 교회 성도들은 매년 정기적으로 빵과 포도주를 나누며 자기들 대신 죽은 예수를 기억하는 성찬식을 갖는다.
하지만 요즘 미국 사형수들의 최후 만찬은 호화판이다. 지난해 처형된 연쇄살인범 존 웨인 게이시는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한 통과 튀긴 새우 12마리를 먹어치웠다. 역시 흉악 살인범들인 스티븐 스피어스는 피자 한 판(라지 사이즈)을, 티모시 맥베이는 아이스크림 두 컵을 청해 먹고 처형됐다. 강도‧납치‧ 살인범인 앤젤 디아즈는 최후만찬을 금식으로 치렀다.
물론 이들의 마지막 말도 예수와 판이하다. 간수들에게 “내 항문이나 핥아라”며 욕하고 “빨리 죽여달라”거나 “잘 먹고 잘 살아라”며 발악하기 일쑤다. 하지만 1992년 처형된 살인범 로저 콜맨은 “오늘밤 아무 죄 없는 사람이 살해당한다. 나의 결백이 입증될 훗날 미국인들이 다른 문명국의 국민들처럼 사형제도의 부당성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콜맨은 훗날 DNA 검사로 진범임이 재확인됐지만 그의 말에 일리는 있다. 지난 40년간 처형된 사형수 156명이 사후 첨단 수사기법을 통해 무고한 것으로 판명됐다. 전국 각지에서 사형폐지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대량 살상범 딜란 루프(Roof)가 지난 10일 연방 배심으로부터 사형평결을 받아 사형제도의 존폐논란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골수 백인우월주의자인 루프(22)는 지난 2015년 6월17일 흑인교회인 찰스턴 이마누엘 아프리칸 감리교회의 성경공부 모임에 반자동소총을 옷 속에 숨기고 참석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상원의 최연소 흑인의원인 클레멘타 핑크니 목사가 약 40분간 예수의 ‘씨 뿌리는 자’ 비유(마가복음)에 관해 설명하는 동안 루프는 고개를 떨군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공부가 끝난 후 축도를 위해 신도들이 눈을 감자 루프는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핑크니 목사부터 쏜 후 70여발을 무차별 총격해 9명을 살해했다. 한 87세 권사는 10여발을 맞고 벌집이 됐다. 루프는 한 신도에게 “목숨을 살려줄 테니 오늘 일어난 일을 사람들에게 전하라”며 “너희 흑인들이 매일 거리에서 백인을 죽이고 백인여성을 강간하고 있다”고 소리쳤다.
루프는 사건 다음날 체포됐다. 중학교 중퇴생인 그는 법정에서 국선변호인을 제치고 스스로 변론하며 “지금도 나는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핑크니 목사의 추도사를 발표하고 인종화합을 호소하자 루프를 용서한다고 밝히려고 법정에 나온 대다수 희생자 가족들이 즉석에서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합창했다.
루프가 금방 처형당하지는 않는다. 지방법원 재판을 따로 받고 연방대법원까지 가려면 수년이 걸린다. 날로 확산되는 사형폐지 여론도 변수다. 지난해 사형찬성 여론이 거의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50%이하로 떨어졌다. 뉴욕‧미시간‧하와이를 포함한 19개주엔 사형제도가 없다. 워싱턴‧오리건‧펜실베이니아‧콜로라도 등 4개주 주지사는 사형집행을 보류시킬 수 있다.
사형제도가 흉악범죄를 저지하지는 못한다. 교계는 사형이 낙태처럼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한다며 반대한다. 나도 보수쪽이지만 세계최고 인권국가인 미국은 무고한 민간인을 참수하는 이슬람국가나 고위관리를 하루아침에 공개처형하는 북한에 모범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후만찬 비용을 빼고도 사형수 1인당 100만달러 정도인 재판비용도 만만치 않다.
사형이 아니라도 종신형으로 족할 것 같다. 루프의 총격에 여동생을 잃은 한 교인은 “그가 종신형을 살면 죽기 전에 예수를 만나 새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 자신도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유대인들의 돌팔매 처형에서 구해줬다. 하지만 미국의 사형제도는 끄떡 없다.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5-4의 보수성향으로 기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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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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