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한나라 황제였던 영제의 공통된 약점은 3가지 정도로 축약된다. 자신만의 비전이 없었고, 민의를 듣지 않았으며, 간신배를 중용했다는 점이다. 잘못된 가신을 맹신한 점에서 박 대통령은 중국사에서 간신의 대명사인 ‘십상시에 농락당했다’고 조롱당하고 있다.
주군은 외로운 자리다. 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고독하고, 단단할 것 같지만 여린 구석이 있다. 권신이나 간신들은 이런 약점을 파고들었다. 이들이 얼마나 치밀한가 하니 작가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는 영제에게 상소하는 충신들이 나온다.
이들은 “천하의 모든 백성들이 간악한 십상시의 고기를 씹고자 하나 폐하께서는 오히려 그들의 자리를 높이셨다”고 절규했다. 그러나 영제는 “십상시 중에 한둘이야 충신이 없겠느냐”라고 간과했고 결국 나라의 멸망을 자초했다.
현대판 십상시도 이와 유사하게 크게는 나라를 말아먹고, 작게는 기업과 커뮤니티를 망친다. 물론 좋은 가신들이 보스를 잘 보필한 사례는 한국의 현대 기업사에도 많아서 삼성 이건희와 이학수, 현대 정주영과 이익치·김윤규, SK 최종현과 손길승, LG 구본무와 강유식, 롯데 신동빈과 이인원, 신세계 이명희와 구학서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믿었던 가신의 반란으로 어려움을 겪은 경우도 있었으니 삼성은 2008년 구조본 법무팀장 출신 변호사의 내부고발로 촉발된 잡음으로 인해 비자금 특별수사를 받는 곤욕을 치렀다.
이렇듯 과하면 해롭지만, 없으면 아쉬운 가신 그룹의 난제를 어찌 풀까. 한국의 재벌가 출신 치고는 세파를 덜 겪은 K회장에게 물은 적이 있다. 직원들이 인화단결하며 회사는 꾸준히 성장했고 보수적인 가풍과 기업경영 덕분인지 재벌 총수에게는 흔한 검찰 조사 한번 받은 적이 없는 그다.
K회장은 “사장단에 방향만 제시하면 알아서들 잘 해 나간다”며 “대신 나는 말단직원들을 챙기는데 직원들을 통해 경영진을 들여다본다”고 귀띔했다. 특히 마지막 대목은 ‘들여다본다’고 말했지만 ‘감시한다’로 또렷이 들렸다.
그의 한마디에는 박 대통령이나 영제에게 없는 것이 함축돼 있다. 보스인 자신은 비전을 만들고 직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면서 가신들이 타락하지 않도록 예방하는데 에너지를 쏟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늘 아래 오직 주군 한 사람의 아래일 뿐, 나머지 모든 이의 위에 있다는 뜻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인 가신을 다스릴 수 있는 건 보스 뿐이다.
다만 충신이나 간신이나 모두 보스에게 감탄할 준비, 보스를 위해 전진할 준비가 돼 있고, 보스와 의견이 충돌할 때는 대개 질 준비까지 돼 있다는 공통점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스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니 곤욕을 겪지 않으려면 보스 나름의 혜안을 기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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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일 경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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