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딜쿠샤 내부 사진
3·1 운동과 제암리 사건 등을 전 세계에 타전하며 일제의 만행을 널리 알린 미국 AP통신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 그가 아내와 함께 살았던 서울 종로구 행촌동 '딜쿠샤'를 복원해 일반에 개방하는 사업이 속도를 낸다.
서울시는 이달 17∼26일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등이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해 앨버트 테일러 관련 유품 300여 점을 국내로 들여온다고 17일 밝혔다.
'희망의 궁전'이란 뜻의 딜쿠샤는 앨버트 테일러가 1923년 빨간 벽돌로 건축했다. 영국과 미국 주택 양식이 섞인 지하 1층∼지상 2층, 총면적 624㎡ 규모로, 일제강점기의 근대건축 발달 양상 연구에 중요한 건물로 꼽힌다.
앨버트 테일러는 1942년 일제의 협박으로 미국으로 추방될 때까지 약 20년 동안 아내 메리와 함께 딜쿠샤에서 살았다.
그는 미국 추방 뒤 1948년 "한국에 묻히고 있다"는 유언을 남기고 현지에서 숨졌다.
서울시와 기획재정부, 문화재청, 종로구는 지난해 딜쿠샤를 70년 만에 원형대로 복원해 3·1 운동 100주년인 2019년 전면 개방하기로 하고 복원 사업에 나섰다. 복원과 관리, 운영은 서울시가 맡기로 했다.
서울역사박물관 측은 이달 샌프란시스코 멘도시노를 방문해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 제니퍼 테일러(50)로부터 유물 300여 점을 기증받아 항공편으로 국내로 가져올 계획이다.
제니퍼는 작년 3월 한국을 찾아 조부와 증조부가 묻힌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묘역을 참배하고, 딜쿠샤 관련 테일러가(家) 유품 349점을 기증하겠다고 서약했다.
기증 유품은 딜쿠샤 내부 사진과 문서, 앨버트 테일러 관련 신문기사와 문서, 앨버트 테일러 액자, 메리 테일러가 그린 서울풍경화와 초상화, 책 '호박목걸이' 원본 원고 등이다.
'호박목걸이'는 메리 테일러의 자서전으로 3·1 운동과 고종 장례식, 한국에서의 삶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일제강점기 경성(京城)의 모습과 생활사에 관한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서울시는 문화재청, 전문가 등 자문을 통해 딜쿠샤를 앨버트 테일러 거주 당시 모습으로 원형 복원하되, 내부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기여한 외국인을 위한 기념관과 지역주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하기로 기본계획을 세웠다.
박물관 측은 미국 방문에서 시애틀에 있는 노먼 소프 전 위트워츠대 정치역사학과 교수도 만난다. 그가 소장한 대한제국 시기 서울 관련 사진과 엽서 등 자료를 확인하고 기증을 협의한다.
한편, 딜쿠샤에 불법 거주하던 12가구 가운데 3가구가 현재 이주를 마쳤다고 시는 전했다.
시는 이들이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임을 고려해 갈등협상팀을 투입해 법이 허용한 범위에서 서울시의 다양한 주거·복지 제도를 통해 자발적으로 이주하도록 지원한다.
시는 내년 3월까지 이들이 이주를 마치면 본격적으로 딜쿠샤 복원을 시작하고, 내년 중 딜쿠샤를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영구 보존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기증받은 유품을 잘 정리해 앨버트 테일러의 행적을 복원하고, 그의 행적을 통한 서양인 독립운동사 소개 자료도 정리할 계획"이라며 "딜쿠샤 복원을 차질없이 마쳐 계획대로 2019년 3·1절에 맞춰 개방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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