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목적을 가지고 사는 삶은 얼마나 단순하며 또 효율적일까. 실제 무엇을 하고,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게 되는지를 경험으로 알고 있다면, 자연스레 목적이 이끄는 삶이 주는 추진력을 갈망하게 된다.
올림픽을 보면서 다시금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됐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경기를 목표로 몸을 단련하고 정신을 집중하는 삶, 그로 인해 결집된 강력한 힘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영화 같은 이야기들로 회자되곤 한다.
단기적인 목표라 해도 그렇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단기 목표를 달성하거나 그에 근접하려 노력하는 경험은 결국 개인의 강력한 프로파일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올림픽에 열광하는 이유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공정한 룰이라 짐작해본다. 출생 신분이나 배경, 외모 등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서게 되는 출발선 같은 것 등이 그 예이다.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등의 명언처럼 후천적 노력에 희망을 거는 평범한 대중의 판타지를 만족시킨다고 하면 너무 과한 표현일까. 물론 이마저도 이미 신화와 같아졌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가난한 천재는 없다”는 말로 급변해버린 사회를 풍자하기도 한다. 즉 경제력이 뒷받침된 교육과 훈련으로 단련된 사람들이 다시금 사회의 주류로 편입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다.
우리는 ‘금수저’ 혹은 ‘다이아몬드 수저’ 등을 운운하며 개인의 노력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이에 오직 땀과 시간만으로도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한 올림픽 같은 행사 큰 위로가 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물론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만한 나라와 개인의 환경적 차이는 분명 존재하겠지만, 그럼에도 예상치 못한 변두리 국가 출신 선수들의 선전 소식을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다시 ‘집중하는 삶’으로 돌아가 보자. 그러한 삶으로 스스로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극기(克己), 즉 스스로를 이기는 것이 아닐까.
“자기의 감정이나 욕심, 충동 따위를 이성적 의지로 눌러 이긴다”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처럼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것은 그 외의 것들에의 상대적인 무관심과 희생을 의미한다. 이러한 결심엔 물론 현재의 자신의 삶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그 가치의 경중을 제대로 따질 줄 아는 판단력이 수반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올림픽 선수들의 메달 소식은 단순히 개인적 영광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속한 가족 단체 더 크게는 한 국가의 기쁨과 승리로 이어진다. 이러한 관점으로 개인의 일상을 돌아보자.
모두가 갈망하는 사회변혁은 결국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각 개인의 변혁을 의미한다. 자신이 속해있는 단체나 국가를 존중하는 삶의 설계도를 가지고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집중과 노력을 더할 수 있다면 가까운 미래의 우리의 모습의 변화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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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유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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