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열모 전 상록회 회장 영구 귀국에 송별행사 이어져
▶ 페더럴웨이 4개단체 및 서북미 문인협회
분단ㆍ산업화 등 질곡과 부침으로 점철된 한국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해온 동열모(89) 전 페더럴웨이 상록회장을 위한 송별식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동 전 회장이 25년간의 미국 이민생활을 정리하고 오는 15일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기로 결정하면서 그와 석별의 정을 나누기 위한 자리들이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말인 9일 밤 한국 전통 선술집 형태로 꾸며진 페더럴웨이 창고 식당에서 페더럴웨이지역 한인 단체들이 준비한 송별식이 열렸다. 페더럴웨이 한인회를 중심으로 페더럴웨이 통합한국학교, 페더럴웨이 한인학부모협의회, 상록회 등의 회원들이 참석해 막걸리 잔을 나누며 “한국에 가셔서 120살까지 만수무강하면서 후손들에 모범이 됐던 열정과 풍류, 지성과 지혜의 삶을 이어가시라”는 덕담과 함께 감사패를 증증했다. 조승주 전 타코마한인회장도 참석해 늘 존경해왔던 동 전 회장과의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서북미문인협회(회장 지소영)도 다음날인 10일밤 페더럴웨이 한인회관에서 송별 모임을 가졌다. 심갑섭 전 회장은 격동 속에 살아왔던 동 전 회장과의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는 이별시를 헌사했다.
한국 정부가 만 65세 이상에게 이중국적을 허용하면서 영구 귀국하는 한인 시니어들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동 전 회장도 자년 3명이 살고 있는 한국으로 귀국을 최종 결정했다. 한인사회가 그와의 이별을 남달리 아쉬워하고 있는 것은 그가 살아온 삶과 자세가 ‘아름다운 노년’으로 존경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일제시대인 1927년 함경북도 북청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다 광복 이후인 1947년 자유의 품을 찾아 남한으로 넘어왔다. 이후 한국전쟁을 겪었고 1957년 현재의 농촌진흥청인 당시 농사원에 특채로 채용됐다. 한국 전쟁 이후 굶주림에 벗어나기 위해 미국 원조를 통해 만들어어졌던 농사원이 출범한 지 2개월 뒤에 합류해 사실상 창립멤버이다. 그는 32년간 근무하며 한국 농촌발전의 획기적 사업이었던 ‘4H’와 ‘새마을운동’을 주도했다. 이 같은 공로로 1979년 대한민국 녹조근정훈장을 받은 그는 공보관 등을 거쳐 1988년 정년 퇴임한 뒤 파키스탄 정부의 발전 프로그램을 돕는 컨설턴트로 활동했고, 1991년 셋째 아들의 초청으로 미국 이민의 길에 올랐다.
이후 노인회인 상록회 등을 이끄는 지도자로 나서 “노인들도 받기만 하지 말고 줘야 한다”며 장학금 제도를 만들었다. 또한 서북미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시애틀지역 주간지 등에 칼럼을 꾸준히 써왔고, 한미연합회 워싱턴주 지부(KAC-WA)등이 한국어 선거책자를 추진할 때 시니어 대표로 나가 연설하는 등 한인들이 주류사회에서 당당한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동 전 회장은 “페더럴웨이에서 25년 살다가 귀국하게 됐는데 그동안 함께 했던 많은 분들의 고마움을 잊지 못할 것”이라며 “미국에 사시는 한인분들은 투표에 많이 참여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큰 아들 집과 청평쪽에 있는 가족 별장에서 지낼 생각”이라며 “언제라도 미리 연락을 하시면 같이 만나 회포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양준기자 june66@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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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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